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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un 17. 2019

가끔은 소설을 읽자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해 고민이라면

감정이 메마른 그에게 내려진 처방


한 친구(남)가 페이스북에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캐치하는 능력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서 감정수업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도 회사에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는데 그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와 통화를 하며 여성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조언을 해주기는 했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 여성은 친구에게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 친구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당사자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으랴.


친구는 학구열과 지식탐구열이 강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자부심도 크다. 온갖 어려운 책은 다 읽는다. 단, 소설만 빼고.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했을 때 그는 항상 역사나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소설은 가볍고 소모적이라 얻을 게 없어서."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사람에 따라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을 지식으로 진지하게 채우고 싶어하는 친구에게 소설읽기야말로 시간 낭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내려진 처방은 다름아닌 '소설을 읽어라'였다.


감정이 가진 다양한 이름


한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는 제자들에게 '짜증난다'라는 말을 절대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이 '짜증난다' 한 마디로 뭉뚱그려지기 때문이다. 말은 '짜증난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서운함이나 황당함, 분노처럼 다른 이름을 가진 감정일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타인의 감정에 둔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진 타인과의 교감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 카테고리가 적으면 타인과의 교점도 그만큼 줄어들어 공감을 덜 하게 된다. '저 사람이 왜 저러지?'라는 의문이 해소되기 어려운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 풍부하지 않으니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다. 공감이 되지 않는 사람끼리 하는 연애는 얼마나 어려운가. 연애뿐 아니라 직장상사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행동과 감정이 갈등의 씨앗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소설가 김영하. '인간은 왜 소설을 읽을까?'


소설은 감정의 대변인


소설 속에는 다양한, 정말 다양한 감정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름없는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자기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소설은 내 감정의 대변인이 되어서 타인의 감정도 읽어내고, 타인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언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일일이 들여다보고 해석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바쁘다.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어떻게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타인의 감정을 모른 채로 갈등만 겪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감정을 읽으려면 이론이 아닌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심리학이나 대인관계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라고 권하는 이유는 몰입 때문이다. 소설에 몰입하는 독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한다. 감정이 이입된다는 것은 일종의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간접체험은 심리 이론보다 훨씬 실제적이다. 타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 이론이라면 간접체험은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수많은 인간관계를 대리체험할 수 있다. 허구의 인물을 따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현실에서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을 소설로 미리 겪음으로써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좀 더 의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다.

친구의 말처럼, 소설은 가볍고 소모적이라 얻을 만한 게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힐링이 화두가 된 요즘, 나의 축 처진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존재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빙의해줄 존재도 필요하다. 통쾌한 결말이 있는 영화같은 사이다가 아니어도, 내 감정의 맥을 짚어주고 이름을 붙여주며 나와 공감해주는 단 하나의 소설만 있어도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일어날 수 있다. 소설은 그토록 느리고 조용하게, 봉인된 감정의 매듭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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