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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ul 10. 2019

글은 되도록 끝까지 읽자

작가의 독서

메뚜기식 독서


사람마다 독서 습관이 다를 것이다.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기분 따라 바꿔가며 읽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잡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다. 여러 권의 책을 두고 왔다 갔다 한다. 쉴 때 읽는 책, 자기 전에 읽는 책, 밥 먹을 때 읽는 책이 다 다르다. 지루한 책은 끝까지 읽지 않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지루한 책 한 권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꽤나 많은 책을 읽어냈고, 꽤나 많은 책을 포기했다. 이 방법이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나쁜 습관


나에게는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다. 인터넷으로 기사나 블로그 포스트를 탐색할 때면 글을 끝까지 읽지 않고 뒤로 돌아가 다른 글을 찾아 읽는 것이다. 앞서 읽던 것과 관련이 있는 글도 아니고, 그저 포털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흥미로운 제목을 클릭해 그야말로 ‘훑어’ 볼뿐이다. 긴 글을 읽다가 지루해질 때쯤 되면 읽기를 포기한다. 


그런 식으로 여러 개의 글을 맥락 없이 유랑하듯 읽는 것이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다. 긴 글을 안 읽으니 생각의 깊이도 얕아진다. 그리고 그 습관이 그대로 독서에 적용되었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놓고 기분과 상황에 따라 골라 읽는다. 선택지가 많으니 한 권을 읽다가 지루해질 때쯤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지루하다고 판단된 책은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한다. 세 권 중 한 권은 다 읽지 못한 책이다. 하나의 주제에 생각이 계속 따라가도록 지루함을 이겨내고 읽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된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작가


이런 습관은 작가에게 치명적이다. 작가의 글에는 깊은 생각의 증거가 담겨야 한다. 단순히 글쓰기 소재를 찾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 작가는 진득한 독서를 통해 생각의 정수를 글로 뽑아내야 한다. 


그런데 짧은 독서를 하느라 생각 따라가기를 포기한다면 결국 깊이 있는 글이 나오질 못한다. 인터넷 상에서 수박 겉핥기 하듯, 작가가 쓰는 글 역시 단편적인 내용만 남을 수 있다. 끝까지 읽기를 포기하고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글쓰기도 포기하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가 긴 글을 읽고 깊은 생각을 하겠는가.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SNS 글을 보면 짧은 생각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 단편적인 정보만 얻으니 단편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적어도 작가라는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짧으면 쉽게 선동당한다. 또 의도치 않게 선동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생각이 깊어지지 않음을 늘 우려해야 한다. 글쓰기란 참 쉽지 않은 작업이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표절 작가들 빼고.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2018년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로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당선.

카카오 브런치에 일상과 생각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일러스트 도안사였다가, 번역사였다가, 영어강사였다가, 뜬구름 잡는 딴따라였다가,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공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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