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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ul 16. 2019

창작자를 죽이는 '짜깁기'라는 독성물질

소비자가 기업윤리를 따지기 시작했다

다단계로 상품 팔기


다단계에도 합법이 있고 불법이 있다. 여기서는 합법적 수준에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다단계회사에서 회원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그것을 팔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은 설명을 들은 회원의 몫이다. 좋다고 판단되면 그 상품을 사서 쓸 것이고, 혼자 알기 아깝다 싶으면 남들에게 소개한다. 소개의 대가도 받을 수 있다. 사업자로 가입해 상품을 소개하고 매출이 일어나면 돈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른 형태의 보상


어떤 사람이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동시에 자신의 책,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상품을 판매할 도구로 청년들을 이용했다고 치자. 불안하고 무력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멘토의 말 한 마디는 매우 강력한 자극제다. 멘토가 하는 모든 말이 그들의 가슴에 팍팍 꽂힌다. 멘토의 카리스마와 언변에 매료된 청년들은 그의 쓴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멘토가 소개하는 상품들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입소문을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상품이 알려지게 한다. 덕분에 멘토의 상품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럼 상품을 구매하고 입소문을 낸 멘티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그들은 금전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멘토의 격려와 채찍질을 통해 이미 마음의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상체계는 다르지만 다단계회사의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장에는 타깃이 존재한다


시장과 기업은 아무 물건을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 타깃을 분명하게 설정한다. 10대 청소년에게 돋보기 안경을 팔 수야 있겠는가. 청년 멘토의 타깃은 분명하다. 불안한 청년을 공략하는 것. 그들에게 팔고자 하는 말과 글을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예쁜 포장지를 막상 뜯고 보니 진짜 좋은 상품이더라 느꼈다면 그 사람은 멘토가 노렸던 타깃이 확실하다. 불안한 청년. 그런데 뜯어보니 전혀 창의성도 없고 죄다 여기저기서 베껴다가 만든 조잡한 물건이더라 느꼈다면 그 사람은 타깃이 아니다. 애초에 멘토의 설득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애초에 멘토의 상품이 필요없는, '불안한 청년'의 단계를 이미 지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같은 상품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좋다고 느끼면 홍보할 수도 있고, 나쁘다고 느끼면 욕을 할 수도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멘토의 상품 역시 그렇다. 좋다는 사람은 타깃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별로라는 사람은 타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만 좋으면 그만?


그런데 문제는 상품이다. 타깃은 잘못이 없다. 나한테 필요한 상품이면 그만이니까. 2017년쯤 생리대 파동이 있었다. 유해물질이 포함된 생리대가 시중에서 회수조치되었다. 수많은 여성이 분노했다. 분노한 여성들은 사건이 터지기 전에 문제의 생리대가 어떤 독성을 포함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 몸에 맞는 제품에 만족하고 있었을 뿐이다. 유해물질 파동이 터진 후, 해당제품에 만족하던 사람들은 '내가 만족한다는데 유해물질이 대수냐'라는 반응을 보였을까? 오히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생리대 애용자가 아닌 여성도 분노했고, 생리대를 쓸 일이 없는 남성들 역시 그랬다.


정작 분노해야 할 사람들은 타깃이다


청년 멘토의 타깃이었던 사람들은 분명 그의 상품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짜깁기'라는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사라고 볼 수 있는 그 멘토는 정확한 조사를 하기도 전에 그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멘티였던 이도, 전혀 상관없는 이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생리대 파동 당시 나는 해당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분노했다. 여러 기업의 생리대에서 비슷한 물질이 나왔다고 해서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내가 짜깁기 파동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해물질이기 때문이다. 그 멘토의 타깃이 아님에도 분노하는 이유는 상품을 만드는 자의 양심 자체가 '불량'이기 때문이다. 독성 생리대를 만드는 기업의 양심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짜깁기 멘토를 신봉하는 청년들은 생리대 속 독성물질이 독성이 아니라고, 조사결과가 잘못된 것이라고, 혹은 남들도 다 그렇게 만든다고 우기면서 독성 생리대를 계속 사용할 생각인 건지, 궁금해진다.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2018년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로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당선.

카카오 브런치에 일상과 생각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일러스트 도안사였다가, 번역사였다가, 영어강사였다가, 뜬구름 잡는 딴따라였다가,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공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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