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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ul 17. 2019

오늘도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간다

작가의 슈필라움, 카페.

여러가지문제연구소 김정운 소장과 김태훈 칼럼니스트의 라이브 방송을 보았다. 나만의 공간 슈필라움. 방해받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김정운 소장은 슈필라움이라 칭했다. 그는 바닷가 미역창고를 작업실로 만들어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슈필라움은 아지트다.




그날의 방송을 보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문구가 실린 예고 배너는 일과 휴식과 가사의 구분이 모호한 채로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나를 자연히 시청자의 자리로 이끌었다. 글을 쓰는 사람. 어쩌다 보니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어디에도 출근하지 않는 나의 하루는 규칙도, 마디도 없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소파에 드러눕고, 드러누우면 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그러다 지겨우면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몸을 움직였으니 또 쉬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 견뎌서 텔레비전을 켜고, 정신을 차려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때마침 밥 먹을 시간이 되어서 끼니를 때우고, 반나절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노트를 펼친다. 어디에 마디를 그어야 할지, 어디에 구두점을 찍어야 할지, 경계가 모호한 리듬 깨진 하루를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종일 보내고 있다. 뭔가를 하긴 한 것 같은데 뭘 했는지 알 수도 없이 잠자리에 든다. 가끔 출퇴근을 하는 남편이 부러울 때도 있다. 적어도 그에게는 일만을 위한 공간이 있고, 하루 가운데 마디마디가 있어서 리듬이 저절로 만들어지니까.


마디가 없어!


물론 집이라는 공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기는 하다. 제한이 없고 구분이 없다. 제한이 없는 환경에서 누가 절제력을 발휘해 머리 쓰는 일에 집중하려 할까. 하루 종일 먹고 놀고 쉬고만 싶지.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글밥을 먹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늘 이래 왔다. 잠시 집중하다가도 금방 마음이 거실 소파로 향한다. 혹은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그렇게 흐트러진 집중력은 한동안 잘 돌아오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내 대답은 늘 '바쁘다'였다. 눈을 뜨고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집이라는 일터에 있었다. 일하다 쉬다 먹다 놀다 일하기를 반복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으니 하루가 통째로 '일'의 범주에 들어갔다. 진정한 휴식도, 진정한 근무도 없는 하루의 연속. 일과 휴식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에 구분을 두어야 했다. 그 경계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글이 안 써질 때면 근처 카페로 나간다. 봉준호 감독도 시나리오를 쓸 때면 카페로 나간다고 했다. 집에서는 퍼지기 일쑤라나. 신기하게도 카페에 가면 앉아있는 시간을 정말 알차게 쓰고 나온다. 그래 봐야 두세 시간이지만, 그 두세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여덟 시간보다 알차다. 카페에서는 딱 한 가지,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커피는 바리스타가 알아서 만들어주고, 누우라고 유혹하는 소파나 침대도 없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간의 압박이 무서워서 최대한 목표치를 달성하려 노력한다. 도서관에서 글을 써본 적도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불편한 마음에 일이 되질 않았다.


나의 슈필라움, 카페.


마음의 여유는 공간의 여유, 시간의 여유와 비례하는 것 같다. 이웃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여유롭지 못한 집에 사는 게 일상이 된 우리는 공간의 확장을 꿈꾸며 카페를 찾고 아지트를 찾는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손님도 많지 않은 편인데, 도심에 위치한 카페에 가봤더니 일명 '카공족'이 손님의 반 이상이었다. 그 사람들도 나만의 공간을 찾아 카페로 나선 것일 테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카페를 찾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집을 넘어서는 확장된 공간의 이상적인 형태가 분명 카페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카페 말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공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 헤매고 헤매다 정착한 곳이 바로 카페가 아닐까.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2018년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로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당선.

카카오 브런치에 일상과 생각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일러스트 도안사였다가, 번역사였다가, 영어강사였다가, 뜬구름 잡는 딴따라였다가,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공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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