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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Nov 19. 2019

작가가 운동을 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며칠 전, 네이버에서 '작가의 본심'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열렸다. 유명 작가들이 연단에 올라 작가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운좋게 정유정 작가를 만날 기회를 얻어 분당에 있는 네이버 본사에 다녀왔다.




나는 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작가라는 말을 감히 써도 될는지 아직 모르겠다. 그것은 정유정 같은 이름에나 붙는 멋진 수식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끄러움과 존경심을 탑재한 채 관객석에 앉아서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했다. 무명작가와 유명작가 사이에도 접합점이 있음을 깨닫고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


정유정 작가는 작가에게 중요한 것들을 여러 가지 언급했는데, 그가운데 내가 요즘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체력의 중요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매일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관리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생각은 이랬다.

 

'작가가 무슨 체력 관리를 저렇게 철저히 한담? 난 운동하기 싫은데. 그리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운동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겠어.'



나도 검도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희열을 즐기던 때가 있기는 하다. 일이 바빠져 운동을 중단한 지 7년 정도 되었다. 그 사이에 살이 8킬로그램이 쪘고, 식이조절로 뺐다가, 작가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쪄버렸다. 검도로 키웠던 근육은 다 녹아버린 듯 흐물거리고, 보기 흉한 셀룰라이트가 여울처럼 출렁거린다. 하지만 살이 찐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주로 집에서 글을 쓰다가 언제부터인가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집중도 하지 못해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전업작가의 삶을 선택하고부터 완벽한 집순이가 되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햇볕도 부족하고, 움직이지도 않고, 머리도 안 돌아간다.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면 산책을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책횟수도 줄었다. 날이 추워서, 혹은 더워서, 밥 먹을 시간이라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싫어서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산책을 피했다. 집에서 안 나가기 시작하자 점점 더 붙박이처럼 변해갔다. 문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움직이지 않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졌다. 그 피로감에 굴복하니 무기력이 찾아왔다. 무기력이 계속되니 우울감이 엄습했다. 글은 당연히 써지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가서 10만 원 선결제를 했다. 돈을 미리 냈으니 억지로라도 카페에 갈 것이고, 카페에 가기 위해서는 15분을 걸어야 할 것이며, 걷는 동안 햇볕을 받아서 세로토닌도 충전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그 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전보다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늘기는 했어도 여전히 발을 떼기가 어렵다. 일주일에 세 번은 나가겠노라 다짐했건만 실상은 한 달에 세 번. 무기력은 계속되었다. 카페에 가면 노트에 한 글자라도 끼적이게 되리라는 걸 알지만 '쓸거리도 없는데 가서 돈 쓰고 앉아있으면 뭐해'라는 생각으로 또 핑계를 대고 있다.


이 무기력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운동부족이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몸이 무기력할 때 마음이 이끌어주고, 마음이 무기력할 때 몸이 이끌어주어야 한다. 나는 오랜 시간 몸을 쓰지 않고 마음으로만 버티고 있었다. 버티기가 한계에 다다르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노력해야만 한다. 집에서 나가기는 싫다. 헬스장에서 남들과 부대끼는 것도 싫다. 그럼 집 안에서 운동을 하자, 아무거나 하면 작심삼일이 되어버릴 테니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자. 실내자전거를 사들였다.



거실에 실내자전거를 설치한 뒤로 오랜만에 숨이 차고 땀이 나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다. 땀방울에 녹아있는 스트레스 입자가 몸에서 빠져나간다. 이왕이면 강도를 높여 힘들게 운동한다. 살을 빼려는 목적이 아니라 마음을 보살피려는 목적으로 운동한다. 살까지 빠지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체력이 살아나고 정신이 살아나는 게 우선이다. 작가들이 체력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장기간의 집필 랠리에 신체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뇌활동을 활발하게 해서 창작에 필요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정유정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상 후회에 빠져죽지 않으려면 자맥질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2018년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로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당선.

카카오 브런치에 일상과 생각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일러스트 도안사였다가, 번역사였다가, 영어강사였다가, 뜬구름 잡는 딴따라였다가,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공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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