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드라마 마지막 화를 보지 못합니다. 이별이 아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화 내용은 언제나 직접 보지 못하고, 기사를 통해 찾아보곤 해요.
못 보게 된 계기로는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화를 본 그때부터였어요.
첫 화의 첫 장면으로 골목길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채워지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 드라마는 그들의 성장과 사랑 등을 보여준 후
마지막 화의 마지막 장면으로는 모두가 이사 가고 텅 빈 골목을 비춰주고 끝납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골목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고 슬펐는지 여운이 꽤 오래가더라고요.
이 드라마의 OST들도 얼마나 슬픈지요.
<걱정 말아요 그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소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청춘>: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마지막’이라는 말은 참 슬픕니다.
늘 다음이 있을 것 같다가 이제는 볼 수 없을 사이가 되는 ‘이별’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떠나든 혹은 다른 이가 떠나든 그 마지막은 마지막 기회인 만큼 후회 없이 진심을 담아 선물하곤 했습니다.
이별이란 단어 대신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이란 단어로 우회하여 사용해 보곤 합니다.
이런 제 작별 선물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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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9월, 휴학하고 떠난 미국 인턴
화려하고 멋져 보였던 명칭과는 달리, 실상은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부끄럽기 일쑤고 넓은 나라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어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해외에 온 만큼 놀러 다녀야 하는데 여기서는 제가 연락할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도 친해지며 퇴근 후와 주말에 만날 약속들을 채워가기 시작했죠. 그러다 괜한 오해도 받고 사람에게 상처도 받았지만, 늘 한결같이 저를 챙겨주고 어디든 데려다주고 칭찬해 주고
그냥 대화만 해도 늘 빵빵 터지는 솔메이트인 하나 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해질수록 추억들을 쌓을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욱 1년이란 기간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미국 인턴십 기간인 1년이 지나면,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미국으로 이민 온 하나 언니는 계속 이 회사의 직원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머나먼 미국땅에서 만난 인연들은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언니를 포함한 회사 사람들과 헤어질 생각에 언제든 입을 삐죽하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다녔어요.
저보다 함께 한 공간 속 혼자로 남겨질 언니가 더 슬플 것이 걱정되었고요.
그래서 2달 전부터 작별 선물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림 회사에서 만난 만큼 언니의 초상화와 편지를 준비했어요. 다음은 제 심심찮은 농담이나 위로나 응원이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도록 작은 가챠 기계를 준비해 가챠 안에 30여 개의 문구들을 넣어두었고요. 그리고 수족 냉증으로 매번 고생하는 언니를 위한 핫팩과 수면 양말도 준비했죠.
다른 분들에게도 한 명, 한 명 한국어와 영어와 스페인어 등 각자의 언어에 맞게 그분들의 장점과 고마웠던 점들을 다 손 편지와 초상화로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드디어 인턴으로서 마지막 출근일.
준비한 선물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출근했는데, 저뿐 아니라 오히려 동료분들도 저를 위한 선물들을 하나둘씩 들고 오셨었어요. 그렇게 받은 선물은 다 마음이 잔뜩 담겨 있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납니다.
핸드 페인팅 부원 20여 명 각각이 전한 메시지가 적힌 회사 유니폼, 옆자리에서 엄마처럼 따스하게 1년 동안 가르쳐주었던 제인 아주머니가 준 책, 멕시코인들의 팀장이면서 영어 실력이 나와 비슷해 둘만 말이 통했던 에밀리아노가 만들어준 회사 그림, 인턴 하우스에서 엄마 역할을 하며 같이 장 보러 가고 요리도 가르쳐주고 늘 착했던 승혜 언니가 준 편지,
늘 티격태격했던 켄터키 할아버지를 닮은 귀여운 패트릭 팀장님이 준 용돈, 늘 박명수처럼 투덜대지만 츤데레처럼 인턴들의 퇴근 버스 기사를 담당해 주었던 브루노 팀장님이 준 용돈,
그리고 하나 언니가 준 편지와 지갑과 그 안에 든 용돈까지…! (곧바로 시작되는 가족 여행비를 제가 부담하는 상황임을 알아서 다들 20만 원, 30만 원의 돈을 준 것이었어요ㅠㅠ)
그날 받은 선물들 덕분에 마지막이 더 소중하고 애틋함 가득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9년 전 이야기인데도 쓰다 보니 다시 울컥하고 다들 보고 싶네요!
사실 그래서 중국 유학 가서도 미국 회사로 편지들을 써 보내고 졸업과 취업을 하고서는
명절이 되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하나 언니와 함께 그 회사에 찾아가서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왔답니다.
이렇게 시작되었던 하나 언니와의 인연은 한국에 가서도 계속되어, 언니가 한국에 들어올 때 만난 언니의 시누이와도 친해졌고요. 그래서 제 결혼식 때 그 시누이가 축가를 해주고 하나 언니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참석하는 등 더 소중한 인연으로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
2. 2018년 9월, 첫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근일
대학교 졸업 후, 좋아하던 만화인 <도라에몽>의 국내 독점 유통권을 가진 만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좋아하는 만화를 보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설레하며 퇴근하자마자 또 출근만을 기다리곤 했죠.
그렇게 만화 유통 업무를 A부터 Z까지 1년간 경험하며,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취향이 맞는 플랫폼에서 국내 웹툰 PD로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죠.
미련 없이 퇴사를 하며, 그래도 마지막인 만큼 함께 일했던 팀장님과 대리님과 동기분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웹툰 담당팀이었던 만큼, 각각을 닮은 웹툰 여주인공들에 머리 스타일들을 그 사람과 같게 하여 그려주었어요.
처음보다 끝이 더 중요한 만큼 기억에 남을 선물을 드리고 왔는데, 그 인연 덕분인지 매년 연락과 더불어 각각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서도 늘 만나자고 해주시고 밥을 사주시고 이직 제안도 주시더라고요.
3. 2024년 2월, 작가가 되는 글쓰기 33기 마지막
오키로북스에서 4주간 온라인 스터디로 함께 글을 쓰고 힘과 응원을 주었던 33기 작가분들께 자그마한 작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만나자고 하기엔 다들 시간과 일자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 선물을 오키로북스에 맡기고 왔답니다.
만나게 된 곳이 '오키로북스의 작가가 되는 글쓰기 모임'인 만큼 #오키로북스와 #작가를 넣어 글을 쓰는 연필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어요.
연필 끝 부분이 노랑, 파랑, 빨강, 초록, 분홍 등 여러 개가 있었으나 고민 않고 오키로북스의 색인 주황색으로 픽했습니다! �
혹여 밖에서 사용하실 때 실명이 드러나면 개인 정보이기도 하고 쑥스러워하실까 봐 이름 없이 각자의 성으로 각인해 두었어요~ 모임원들 성이 다 다르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직접 드리고 싶었지만 당장 마감일이 코 앞이기도 하고, 다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아 우선 마음을 책방에 맡겨두었습니다. 이 핑계로 하나둘 오키로북스에 들려 인증샷들을 찍어주셔서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