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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Jul 24. 2023

내가 사주던 네 닭꼬치

나는 나름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야 좋은 동네에서조차 서로의 형편을 비교하며 거들먹거리던 친구들이 있어서 별로 깨닫지 못했지만, 형의 외고 입학을 계기로 이사 갔던 강동구서는 확연히 그 차이가 느껴졌다.


당시 강동구는 지금처럼 고층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다 낡은 아파트와 상가들, 어두컴컴한 거리.

그게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이다.


특히 내가 무작위로 배정된 고등학교는 형편이 좋지 못한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그중, 하교 후 학원으로 가는 길에 친한 친구와 닭꼬치를 사며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야. 닭꼬 하나 먹고 가자."

"나 근데 돈이 없어."

"괜찮아. 내가 사줄게."


그날은 내가 산 닭꼬치를 둘이서 맛있게 먹으며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그 닭꼬치 집을 지났다.


"야. 닭꼬치 한번 더 고?"

"나 돈이 없어."

"괜찮아. 내가 사줄게."


그 말을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한걸음 뒤로 빠지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해솔아. 나는 너한테 닭꼬치를 사줄 돈이 없어. 그래서 네가 사주는 게 부담스러워."


그때의 일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 오히려 친구를 상처 입힌 것이다.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고, 특히 그 닭꼬치의 추억이 있는 친구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 친구는 이제 꽤 안정적인 직장에서 생활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


내가 퇴사 후 몇 년간 고독한 고시 공부를 할 때, 유독 그 친구는 내게 굳이 한 번씩 밥을 사주곤 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내가 친구에게 코냑을 한 병 선물했다. 예전에 여행을 다녀오며 샀던 술인데 도저히 나는 양주는 입에 맞지 않아서, 양주를 좋아하는 이 친구 생각이 나서다.


그리고 며칠 후, SNS에 나를 언급하며 양주를 마시는 사진을 올린 친구에게 나는 반응을 물었다.

그동안 밥을 자주 사줘서 고마워서 선물한 거니, 편하게 마시라는 말에 친구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 닭꼬치 사주던 이해솔"


거의 18년이 지난 일인데 친구도 그 닭꼬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말을 들어보니 그때는 아예 용돈이 없어서 닭꼬치는 고사하고 껌 한 통도 사기 어려웠다고.


그러니까 이 친구는 당시에 2천 원 정도 하는 닭꼬치를 사줬다고 내가 고시 공부하던 시기에 계속 밥을 사줬던 것이다.


닭꼬치가 이런 평생친구로 돌아왔으니, 내가 썼던 2천 원은 2천만 원도 더 넘는 가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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