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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Aug 05. 2023

막연한 긍정과 진정한 긍정

취업 등 유독 치열한 경쟁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한국인은 멘탈 관리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노하우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20대 시절과 30대의 마음이 차이가 있는 것 같아서 생각난 김에 정리해보려 한다.


우선, 수능을 준비했던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는 무한 긍정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론다 번' <시크릿> 류로 일컬어지는 일명,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긍정의 힘을 맹신하던 시절이다.


시크릿류 긍정은 개인적으로 부작용이 너무나 컸다. 두 가지 정도만 나열해 보자면 우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공감하기보다는 그 사람은 정신력이 약해서 부정적 감정에 패배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구나 생각만 긍정적으로 하면 성공한다는데 실패자가 있다는 건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일 테니까.


두 번째 부작용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다양한 감정에 직면한다.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절대 '희'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시크릿에 따르면 삶을 긍정으로만 세뇌하듯  채우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믿어버려야 한다. 반론은 용납하지 않고 듣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 간절함을 포기하는 행위니까.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다른 감정이 올라오면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20대 후반까지 이렇게 살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15년 8월까지 그렇게 살았고, 그 계기는 아버지께서 쓰러지신 것이다.


2015년 3월에 아버지께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셨고, 그걸 억지로 긍정으로 버티려다가 6개월 만에 무너져버렸다.


내가 긍정적이라고 아버지께서 깨어나실 리 없고, 가족들이 안 힘들어할 리 없는데 강박적으로 괜찮다고 긍정만 되뇌며 버티다가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2015년 8월부터 반년 간 마음의 병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그걸 극복한 방법은 무한 긍정이 아니라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어떻게 한 걸음씩 하루를 걸어 나갈 것인지 처절하게 다짐한 다음이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미군들이 포로로 잡히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혹독한 포로수용소 생활이 이어졌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던 미군 포로들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좌절하고 자살했지만, 미군 장교였던 스톡데일은 처절하고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현재 상황을 명확히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일명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2015년에는 이 내용이 실린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무한긍정의 굴레에서 번아웃이 왔다가, 비슷한 내용이 담긴 세네카의 <인생론>을 읽고 이겨낼 수 있었다.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시험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고 이상하게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다시 바이오리듬을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음의 병을 극복한 나는, 다시는 힘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다.


'다 잘 될 거야.', '네가 힘내야지.', '버텨야지. 끝까지 해야지.'


사실 이런 위로는 타인을 위한 말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속 편히 넘기고 싶은 본인을 위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섣부른 위로를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울어도 된다.', '열심히 안 해도 된다.', '무너져봐도 된다.'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그리고 나는 이게 진정한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껏 넘어지고 아프더라도 결국 마음과 대화하며  내면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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