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는 남의 일 같으면서도 가끔 내 일인가 싶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이곳 브런치만 봐도 정년퇴직 후 은퇴를 선언하고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분들이 많다.
당연히 평생직장에서 고생하시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신 그분들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때로는 본인의 꿈을 위해, 힘들 때는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이제는 다 내려놓고 본인을 위해 삶을 누리는 멋진 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짧은 직장 경력과 수험 이력을 가진 끝에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분들과 나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같은 '퇴사 후 전업작가'인데 나는 은퇴를 한 것일까.
이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 힘든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왜냐면 내가 아는 한 번아웃은 자아정체성이 무너질 때 오는 거니까. 전업작가 선언을 한 내가 사실은 조기 은퇴한 한량이라는 생각이 들면 번아웃이 올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은퇴의 정의는 아래와 같았다.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그럼 우선 나는 은퇴는 아니다. 직임에서 물러나기는 했어도 그건 회사에서의 직임일 뿐, 원고도 열심히 쓰고 강연도 나가지 않는가. 사회생활도 활발히 하고 있고 말이다.
그럼 내가 요즘 유행하는 파이어족인가 싶어서 파이어족의 정의도 찾아보았다.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를 이룬 사람
경제적 자립도 아니다. 캐시플로우도 안정화되지 않았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은퇴'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작가의 은퇴는 절필이 아니겠나.
수십 년이 지난 후, 내가 은퇴를 굳이 받아들인다면 은퇴가 어떠한 뜻으로 사용되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아래와 같은 답이 나왔다.
'경제적 이윤추구를 그만두고, 기분 좋게 절필하는 것'
돈이 되는 글만 쓰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어디서 당당하게 직업을 '전업작가'라고 말하고 다니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절필이라는 건, 작가로서는 죽음과도 같으니까 절필을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내 의지로 기분 좋게 절필하고 싶다.
나는 문인협회 소속도 아니고어딘가의 문예 출신도 아니다. 그런데 네가 무슨 거창하게 '절필'까지 고민하냐는 코웃음을 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남이 나를 우습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내가 나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어야 하고.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은 먼 훗날에는 '절필' 시기까지 고민하는 멋진 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다.
은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면서, 나는 '전업작가'라는 직업을 추구하며 혹시라도 올 지 모를 번아웃을 조금은 예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