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님이 걸그룹과 커피를 좋아하신다
지리산 화엄사에서 3박 4일
2013년 대학교 3학년 때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다가, 잠시 절에 들어가서 속세를 잊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불현듯, 술자리에서 들었던 학과 선배의 무용담이 생각났다.
'템플스테이'같은 거창한 명목이 아니더라도, 절에 가서 재워달라고 하면 재워주더라는 것이다.
멍하니 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회계학 수업을 듣다가 이 기억이 떠올랐고, 생각 끝에 나도 못 갈 것이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일에 그 생각이 들자마자 집으로 가서 백팩에 옷가지를 구겨 넣었다.
그리고 목,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수업을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제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 수업을 도저히 들을 수 없습니다. 이번 돌아오는 수업 결석을 이해해 주신다면, 절에 들어가서 회복을 좀 하고 오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답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버스터미널로 가서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왜 굳이 지리산 화엄사가 위치한 구례로 갔냐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절이라면 재워주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구례는 녹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리산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했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오후 늦게 화엄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수기 평일의 사찰은 명성과 관계없이 꽤 한적했고,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와불사 앞에 계시는 아주머님 한분이 보여서 다가갔다 물러났다 방황하기 시작했다.
'물어볼까? 뭐라고 물어봐야 하지?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거 아냐?'
짧은 고민 끝에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다.
"저기... 절에서 재워주기도 하시나요?"
"템플스테이요?"
나는 돌아온 대답에 당황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템플스테이처럼 커리큘럼이 짜여있는 게 아니었다. 한량처럼 며칠 머물고 싶었을 뿐인데.
"어.. 아뇨. 그냥 며칠 머물까 하고요."
아주머니는 빙긋 웃으시더니 뒤쪽 한 건물로 고갯짓을 했다.
"저기 원주스님께 물어보세요."
"원주스님요?"
"네."
나는 그게 스님의 법명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숙소 담당스님을 부르는 명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쭈뼛쭈뼛 한 건물로 들어가니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절에서의 국룰대로 사극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원주스님. 계신지요?"
어색한 내 말투에 놀랍게도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서 기다리니, 미닫이 문이 열리고 한 스님이 안으로 들어오라 권하셨다.
나는 들어가서 며칠 묵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스님은 몇 가지 면접 같은 질문으로 내 사람 됨됨이를 가늠하시는 듯 보였다.
그러다 합격선에 들었는지,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1박에 2만 원."
"네? 네."
지갑을 황급히 뒤져보니 택시를 타고 남은 3만 원이 나왔다.
"제가 2박 3일간 있겠습니다. 부족한 만원은 내일 구례시내로 내려가서 뽑아서 드릴게요."
내가 내민 3만 원을 원주스님이 받아 드시더니,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셨다.
그리고 만원을 돌려주시고는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2만 원만 받을 테니,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거라."
그렇게, 걸그룹과 커피를 좋아하시는 원주스님과 메일 한 통으로 교수님들께 속세와의 이별을 고한 대학생의 3박 4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