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라진 스님
지리산 화엄사에서 3박 4일
절에서 무엇을 해야 시간이 흐를까, 서울에서 구례로 출발할 때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화엄사에 도착했던 순간부터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경험과 배움이 계속 이어졌다.
예를 들어 채식만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시작한 사찰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절밥을 포함해 구례에서 경험한 채식요리들은 내 상식을 뒤집었다.
구례에는 채식주의자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지인의 도움으로 그들과 함께 유명스님께서 즐겨 찾으셨다는 사찰음식 전문점에도 가볼 수 있었다.
그 맛은 육류 위주로 식습관을 가지고 있던 내 입맛에도 맞았다. 어쩌면 채식주의자들은 본인들만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날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하길래 햄버거를 사서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사회의 맛이니 기가 막힐 거라 생각했었다.
마요네즈나 달콤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분명 알맞게 간이 잡혀 있는 햄버거였음에도 4일간 몸이 채식에 적응했는지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화엄사로 내려올 때만 해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수업을 수강하기 힘들 정도였다.
갓 제대하고 복학한 상태에서, 군대에서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과 실제 삶의 괴리가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엄사에서 4일 간 지내며 처음 보는 스님의 지지를 받기도 하고, 산을 오르내리며 탈진과 회복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삶을 다시 더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 전 계획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포함해, 홀로 2달이 넘는 유럽여행을 과외로 경비를 벌어 준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도 아침 문안인사 겸 원주스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기 위해 접객실로 향했다.
원주스님은 내가 이쯤 올 것이라 예상하셨는지, 지리산 녹차를 따뜻하게 우려내고 계셨다.
들어오는 나를 보시며 차를 내어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서울에 올라가면 화엄사 녹차 맛이 생각날 텐데?"
지내는 동안 내가 유독 녹차를 좋아했던 모습에 스님이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여기 녹차가 신기하게 입에도 맞고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님."
"나는 요즘 오히려 커피가 더 좋아지고 있어서 큰일이다. 커피 내리는 방법까지 연습 중인데.. 그럼 기다려보거라."
스님은 방 안쪽으로 가시더니 녹차를 한 박스 내어 오셨다.
"선물이니 들고 가거라. 여기가 생각날 때 마시면 아쉬움이 좀 가실 것이다."
딱 봐도 '화엄사 녹차'라고 크게 쓰인 글씨와 단정하게 포장이 되어 있는 모습이 내가 첫날 드린 2만 원보다도 비싸보였다.
나는 이 스님과 연고도 없었는데 마치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접객실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명동으로 가서 티아라 달력을 찾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티아라 달력 있나요?"
화엄사에서 재워달라고 하던 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명동 굿즈샵을 뒤졌지만 아쉽게 달력을 찾을 수 없었고, 나는 대신 커피 원두 내리는 법이 재미있게 적혀있는 책을 사서 원주스님 앞으로 편지와 함께 부쳤다.
지내는 동안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했고 덕분에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다고 말이다.
화엄사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으로부터 너무 기뻐하시더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끔 편지를 보내다가 수년이 지난 후, 지리산 화엄사로 전화를 걸어 원주스님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원주스님께서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행방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본문은 2013년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