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리산 물가를 생각 못했습니다.
지리산 화엄사에서 3박 4일
뎅 - 뎅 -
어김없이 자는 도중 종소리가 울리자, 몸을 곧장 두 번 접어 일어났다.
새벽예불만 무사히 마치면 이제 따뜻한 절밥과 잠자리를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누릴 수 있다.
머리를 대강 눌러 내리고 옷을 갈아입은 후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신발을 벗고 대웅전 마루로 올라서려 하는데, 지켜보시던 비구니 한 분이 화들짝 놀라시며 거기가 아니라고 알려주신다.
무슨 말씀이시냐 되물으니, 스님들만 마루 한가운데로 출입이 가능하고 손님들은 마루 옆으로 신발을 벗어두고 올라와야 한단다.
순간 아차 싶었다.
마치, 성당이나 교회로 따지면 미사나 예배 중에 당당히 가운데 통로로 입장한 셈인가 보다.
마루 옆으로 이동해서 다시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랐다.
비구니께서 뭔가 친절하신 느낌이 들어, 나는 굳이 옆자리에 방석을 놓고 자리를 잡았다.
좋은 선택이었던 게, 내가 새벽예불 도중 법문을 따라 하지 못하자 비구니께서 예불용 법문까지 보여주셨다.
열심히 도와주시는 스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성실히 절을 했고, 원주스님의 흡족한 미소까지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원주스님께 문안인사까지 드린 나는 등산을 좀 해보고 싶었다.
노고단이 해발 1507m이니 충분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운동화와 청바지, 그 위에 면티를 입은 채 물 한 병만 들고 화엄사 옆 길로 호기롭게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를수록 뭔가 이상한 게, 올라도 올라도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등산로 곳곳에는 '곰 출현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험상궂은 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중간정도밖에 오르지 못한 것 같은데 물 한 병은 어느새 조금밖에 남지 않았고 가파른 경사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보이는 다른 등산객들을 보면서 힘을 냈다.
직립보행을 포기하고 네 발로 기듯 경사를 오른 끝에, 쓰러지기 직전쯤 노고단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곧장 대피소 옆 매점으로 향했다.
수중에는 스님이 거슬러주신 만원 한 장과 천 원짜리 네 장이 전부였다. 카드는 절에 놓고 왔고 말이다.
등산 전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오는 버스가 4천 원에 운행한다는 정보를 들었던 나는 버스비로 여유 있게 6천 원을 남기고, 8천 원만 점심값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라면 한 봉지와 복숭아통조림 하나, 물 한 병과 젓가락 하나를 사니 만 원인 게 아닌가.
기절할 것처럼 하늘이 노래지는 상태로 녹초가 되어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황급히 결제하고 복숭아 통조림부터 까서 먹었다.
버스비가 설마 4천 원이면 되겠지 싶어서.
대피소로 들어가, 코펠에 점심을 해 드시곤 다시 출발하려는 아버님 한 분을 붙잡아 사정 끝에 코펠과 버너도 빌렸다.
물만 황급히 끓이고 봉지라면을 해 먹는 나를 보고 아버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시더니 다시 출발하셨고, 나는 덕분에 살았다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식사 후에야 조금 상태가 회복된 나는, 능선을 따라 버스를 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구걸을 해야 하나 싶었다.
'버스비 8천 원'
버스 정류장에는 커다랗게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것과, 다시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 중 후자를 택했다.
기력이 조금 돌아왔고, 몇 천 원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터덜 터덜 나라 잃은 표정으로 노고단 매점에 돌아와서 하산로 표지판을 살폈다.
그리고, 왜 등산할 때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오른 길이 등산로 난이도 중에서 상급에 속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하산로로는 화엄사를 볼 수 있는 탓에 꽤 인기가 있는지, 등산을 끝내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한숨을 내쉬고는 하산을 다시 시작했고, 도중에 만난 외국인들에게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여기를 올랐다니 대단하다는 칭찬을 들으며(놀린 것일지도) 겨우 화엄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주스님과 대학생 봉사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고는, 차가운 계곡물에 청바지에 면 티 그대로 시원하게 몸을 담그고 나서야 억울함이 풀어져 나갔다.
원주스님은 뭐가 그리도 웃기신 지 실실 웃기만 하셨다.
버스비가 4천 원도, 5천 원도 아닌 8천 원이었다니.
스마트폰으로 다시 검색을 해보니,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누군가 올린 블로그 정보는 버스비가 4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래서 사람은 비상금을 넉넉히 들고 다녀야 한다.
* 본문은 2013년에 있었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