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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Nov 26. 2023

신림동 필라테스 전단지

신림동에서 공부하던 시절, 학원 앞에 큰 사거리가 있었다. 학생과 직장인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필라테스짐도 있었는데, 매일 사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한 명이라도 놓칠까 봐 오가는 행인들 틈으로 바삐 움직이는 손길은 프로의 느낌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길을 오가며 몇 달이 지났다.

필라테스 전단지를 주로 나누어주는 장소가 횡단보도 앞이었는데, 그곳에는 채소나 잡동사니를 파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매일 비슷한 낡은 옷차림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길에 앉아 멍한 눈으로 앉아계시는 아주머니.


가끔은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리지도 않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사라지시던 분.


어느 날, 전단지를 다시 바삐 나누어주고 있는 사람을 향해 아주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나도 한 장 줘 봐!"


성큼성큼 일어나서 전단지를 한 장 뺏어 들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특가라고 쓰여 있을 가격 부분을 읽으셨는지, 다시 힘없는 눈으로 전단지를 땅에 내려놓으시고 채소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건너던 횡단보도는 그날따라 너무도 길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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