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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Feb 06. 2024

젊은 작가의 고백(feat. 달러구트 꿈 백화점)

너무 잘 쓴 글은 무섭습니다.

작년 한 해 몸과 마음을 너무 혹사시켰는지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 제주도로 짧게 요양 여행을 왔습니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퀭한 상태로 곧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인 하도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산티아고 순례에서 제가 울면서 과거를 털어냈던 지역인 피니스테레(Finisterre)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바다를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작년 한 해 고생한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고 다시 감정을 토해낼 겸 이곳에서 울기로 생각한 거지요.


첫날은 서울에서의 바쁜 삶 때문이었는지 제주도에 있어도 마음은 계속 서울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놓고 온 일과 앞날에 대한 계획 등으로 온몸이 긴장 상태였지요. 바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일부러 차 렌트도 하지 않고 외지로 왔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일어나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쉬다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북카페 '종달리 746'으로 향했습니다. 제주에서도 가장 외진 곳 중 한 곳인 종달리에 있는 북카페라니, 어떤 곳일까 하는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긴장으로 가득한 몸과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해변길을 굽이굽이 걸어 도착한 북카페 '종달리 746'은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근사한 장소였습니다. 사장님이 정성껏 우려내신 과일청 차와 직접 밑줄을 그어두신 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가슴이 철렁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미예'작가님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입니다. 제가 집은 책 기준으로 첫 출간에 280쇄나 찍어낸 말도 안 되는 베스트셀러입니다.

저에게는 유명한 '이슬아' 작가님의 책만큼이나 읽기 망설여지는 책입니다. 작가가 되기 전, 독자일 때는 잘 쓴 글이 그렇게나 좋았습니다. 그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잘 쓴 글을 읽으면 제가 작아질까 봐 읽기가 무서워집니다.


그러나 오늘은 운명처럼 누군가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듯 책장에 놓인 모습에 집을 용기가 났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읽어나갔습니다. 초반부만 읽는데도 '이미예' 작가님의 통찰력이나 고심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눈부시게 널려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잠, 그리고 꿈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직선 같은 삶에, 신께서 공들여 그려 넣은 쉼표인 것 같아요!'라는 표현에 전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북카페에 너무 길게 있을 생각은 아니었기에, 테이블을 정리하고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안녕히 가시라고 하는 사장님께 작가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소중히 가꾸신 공간 덕분에 피하고 있었던 '유명작가의 글 마주하기'를 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만, 순간 '책 영업사원처럼 느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무슨 고백이라도 앞둔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다 겨우 한 마디 내뱉었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요."

"네?"


제 작가명함을 받고 당황하신 사장님께서는 저만큼이나 당황하신 듯 보였습니다.


"작가는 너무 잘 쓴 글은 읽기 무섭거든요."

"예?"


내가 작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닌데 졸지에 일반화를 시도하는 내 모습에 다시 당황하신 '종달리 746'사장님을 보며 간신히 말을 다시 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하던 책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인데 여기 왔는데 운명처럼 보이는 거예요. 덕분에 읽었고 뒷부분도 읽고 싶어 주문했습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북카페라 응원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그제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하시고 미소를 지으시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나왔습니다. 우물쭈물거린 게 아직도 민망하지만, 북카페를 나와서 다시 하도로 향하는데 달라진 게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 않았습니다.

걸어서 그런지, 혹은 용기 있게 잘 쓴 작가님의 글을 마주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달러구트 꿈 백화점' 초반부를 잠시 읽으며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쓰기로 한 웹소설이 누군가의 '꿈속 세상'이 될 수 있다면 참 재미있겠다고요.


에세이 작가 겸 웹소설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뒤, 웹소설 작가로서의 동기부여가 된 하루였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울면서 감정을 털어내지 않고도 충분한 힐링을 경험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오늘 저는 저보다 나은 작가님의 글을 용기 있게 마주하고 웃었으니까요, 이 사건이 성장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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