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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Feb 15. 2023

좋지 않은 시기일수록, 움직여야 일이 들어와요.

제주도 산골짜기 교정일지

2023년은 개인적으로, 고생과 운이 동시에 따르는 해다. 작년 말 공인노무사 시험에서 고배를 든 이후 다시 불황기의 고난한 재취업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좌절하다가 이를 악물고 투고했던 에세이 원고가 출간 계약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내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갔던 적이 없다. 재수를 하고, 회계사 시험에 떨어지고, 유학이 좌절되었으며 내 나이 서른하나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퇴사 후 다년간 준비한 공인노무사 시험에 떨어졌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다가는 후회한다고 무례한 지적을 하던, 안정적인 길만 고수하던 사람들의 말처럼


'내 인생은 과연 꼬여버린 걸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서 다시 요가원을 등록하고, 주 2회 6km 이상씩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날 것 같았으니까. 떨어지는 자존감과 내 회복탄력성 사이 어딘가쯤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출간교정작업을 핑계 삼아 다시 제주도로 잠시 휴양을 가기로 했다. 예전에 타이밍 좋게 익절 했던 주식 수익으로, 며칠 정도의 일탈은 할 수 있었다.

해가 거의 지고서야 도착했던 하도 해변은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2021년에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던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제주도가 왜 전통적인 유배지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맑게 갠 풍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같은 풍경인데, 날씨에 따라 결정되는 아름다움처럼 내 마음도 그런 걸 거야. 마음이 흐린 날은 내면도 을씨년스럽고, 마음이 맑게 개면 내면도 아름답지.'

그렇게 카페에 들어앉아 본격적으로 시작한 교정작업은, 그래도 힘든 시기에 무언가를 할 것이 있다는 만족감을 주었다.


숙소 주변으로 하도 해수욕장과 카페를 제외하면 아무런 볼 것이 없는 하도리는 심지어 식사를 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다. 어제 잠시 지인을 만나러 서귀포에 다녀올 때도, 2.2km를 숙소에서 걸어 나가서 왕복 4시간을 버스로 오가야 했다.


제주 한 달 살기에서도 그랬듯, 슬로 라이프를 느끼고 싶어서 온 제주에서는 굳이 차를 빌리지 않겠다는 아집이 있었다. 맛집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석식을 신청해서 먹고는, 사장님과 수다를 떨었다.


단순히 펜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사장님은 서울에서 단물 쓴 물 구정물까지 다 맛보고 내려오신 분이었다. 악착같이 8년을 회사에서 일벌레로 살다가 퇴사 후 시도했던 사업도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삶을 등지려 하다가, 이곳에서 숙소를 운영하신다고 했다.


서울에서 당최 왜 그렇게 이를 갈며 죽을 듯이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조금 불안할지언정 제주에서의 평안함이 자기에게는 위안이라고 했다.


내 사연을 쭉 들으시더니 한마디를 하시는데, 이 말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있잖아요 작가님, 세상은요. 우울하고 힘들어서 가만히 있으면 복이 오지 않아요. 제가 손님이 하나도 없다고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잖아요? 그날은 예약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날이에요."


"그런데 지금 손님이랑 이야기를 하고 신나서 떠들고, 저녁식사를 차리고 그렇게 보내잖아요? 그날은 예약이 한 건이라도 들어와요."


"좋지 않은 시기일수록, 움직여야 일이 들어와요."


그렇게 말씀하시자마자, 신기하게도 사장님 전화로 예약 알림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확실한 점은, 나는 항상 인복이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 때라도 진심을 나눌 사람과 배울 수 있는 존재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나도 그저 부지런히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다시 움직여보기로 했다. 깨달음 때문인지, 사장님이 한치를 서비스로 왕창 넣어주셨다는 제육볶음은 어느 맛집보다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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