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혼식

손톱소설

by 김쾌대

"신부는 죽는 날까지 신랑을 사랑으로 감싸주실 것을 서약합니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신부가 주저하는 듯 보이자 하객들이 손뼉을 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한바탕 떠들썩하게 환호성이 잦아들며 이제 신부의 입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쯤해서 이제 '예'라는 말만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머뭇거림이 지속되자 하객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그때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지난달 태어난 그 아기는, 신부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금혼식 때 면사포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던 첫 딸의 손녀, 즉 신부의 증손주였다.


태어나자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출생 신고를 삼 년이나 늦춰서 해야만 했던 신부는, 오십 년 전 친정엄마가 친하게 지내던 건넛마을 김해 김씨 집 안의 맏며느리와 덜컥 정혼을 하는 바람에 혼례를 치러야 했는데 신랑이 그만 중동으로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서둘러 출국하는 바람에 결혼식을 놓치고 말았고, 이듬해 첫 딸이 태어나고 그 뒤로 네 명이나 아이들이 나오면서 결혼식은 떠나버린 버스처럼 요원했으며 그 일이 평생 한이 되어 지내다가, 이번 금혼식을 맞아 자식들의 도움으로 오늘 꿈에 그리던 면사포를 쓰게 된 것이었다.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머릿속으로 스치고 드디어 신부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싫어...요"


워낙 좁게 오므린 틈새로 모기소리보다 더 작게 흘러나온 가슴 밑바닥의 고백은 왕성하게 울어대는 증손주의 울음소리에 묻혀 하객들에게, 심지어 바로 곁에 서 있는 신랑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마터면 禁婚式이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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