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에서는 말이야, 시니어 코하우징이라고 해서 노인 주거 복지를 위해 지자체에서부터 발 벗고 정책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개인 부담이 너무 커서 한참 멀었지…."
경기도 가평 소재 실버타운인 '시니어헤븐 21'의 로비 라운지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300원짜리 커피 믹스를 뽑아 든 노인들이 둥그런 소파 의자에 모여서 환담을 나누는 중이다. 이곳은 작년 가을에 신축되어 분양을 마쳤는데 외국계 자본이 투입되어 최신식 시설과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에 소재한 비슷한 시설보다 매력적인 입주 가격 조건이 입소문을 타면서 피를 튀기는 분양 경쟁을 치렀다. 삼월 초라서 바깥바람이 아직은 매서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지만, 사방으로 트인 통유리창을 통해 로비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무척이나 따사로워서 저쪽 한편에서는 지팡이를 개인 의자 손 걸이에 걸쳐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그 시각, 현관 출입문 바깥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한 사람이 코를 유리창에 박고 로비 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육 개월 전에 첫 입주에 성공했던 박 영감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이 워낙 가까이 유리에 붙어서 창에는 허연 김이 서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지금 무리의 센터에 앉아 차분하게 좌중을 아우르는 최 선생을 노려보는 눈빛이 하도 이글거려서 김 서린 유리창에 금이라도 갈 판이었다. 불과 삼 개월 전만 해도 저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강남에 있는 자신의 건물 자랑과 (원래 대대로 가난한 농사꾼 집 안이란 얘기는 생략하고) 이름난 대학 병원의 의사인 첫째 아들과 그 병원을 운영하는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둘째 아들 얘기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현재 자신의 건물을 관리하는 셋째 얘기는 빼고) 몇 년 전 아내가 먼저 죽어 홀로 된 자신을 며느리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요즘 애들 말로 '올로 라이푸'(그는 욜로를 꼭 올로라고 발음했다)를 즐기려고 이곳에 들어왔다는 주장을 펴면서 다른 노인들의 선망과 부러움을(동시에 질시까지)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었다. 올해 초, 망할 놈의 최 선생이란 저 자(들리는 말에 의하면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임했고 매주 돌아가면서 방문하는 삼 남매 자녀들이 돈을 모아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해서 지원한다고 했다)가 굴러들어와서 박혀 있던 자신을 뽑아내기 전에는 말이다.
박 영감은 행여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무리가 있는 소파 의자에서 멀리 떨어진 출입문으로 슬며시 들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힐끗 곁눈질로 좌중을 훑어보는데 최 선생 옆에 앉아서 다소곳이 얘기를 듣고 있는 차 여사도 보였다. 아니, 차 여사만 보였다. 그녀가 누구인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단아하고 청초한 외모에 바깥양반과는 사별까지 한 홀몸이었으니 입주 초부터 실버타운 내 모든 홀아비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니어헤븐’의 여신과도 같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뭇 할배들의 크고 작은 선물 공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차 여사가 박 영감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둘이 서로 친한 사이가 된 것은 솔직히 영감들이 시기 어린 눈길로 ‘그가 강남의 건물주 때문이 아니겠냐’라며 가시 돋친 말들로 수군거리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어느 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실버타운 소속 영양사가 고심하며 짠 식단에 고등어구이가 올랐는데, 그날 박 영감은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차 여사 자리 옆에 자리를 잡고는 정성스럽게 생선 살을 발라주었다. 흠칫 놀랐던 차 여사는 비록 초면에 가까운 낯선 박 영감의 진솔함과 천진함에 마음이 움직였노라고 나중에 고백을 했다. 차 여사 말대로 박 영감은 어린아이와 같은 면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최 선생이 등장하여 역사와 시사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식후 커피를 얻어먹으며 좌의정 우의정 역할을 하던 김가와 조가 놈을 채뜨려 갈 때에도, 그 둘을 쫓아 나머지 떨거지들이 줏대도 없이 최 선생에 붙을 때에도, 그러다가 마지막에 차 여사마저 나비처럼 날아갔을 때에도 치사하게 그들을 붙잡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신에 식사 때마다 식당에 내려가는 대신 자신의 방에서 생활 도우미가 차려주는 독상을 오롯이 받고서는 이런저런 반찬과 함께 껄쩍지근한 감정의 찌꺼기들까지 씹어 삼켰고 소화도 잘 시켰다.
방문 앞에 도착하니 택배가 놓여있었다. 종이가 아닌 비닐 재질의 상자 안에는 일주일 치 식자재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박 영감은 실버타운 식당 출입을 그만두고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매주 주말마다 장을 봐서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다. (사업이 망해서 이혼한 셋째는 제외됐다) 첫 달에 의사와 교수의 부인이 되시는 첫째, 둘째 며느리가 각기 바리바리 장을 봐왔다가 비싼 백화점 식품 코너 상품들이 즐비한 꾸러미를 살펴본 박 영감에게 코가 빠지도록 잔소리를 듣고서는 입이 댓 발은 나와서 돌아간 뒤에 두 번째 방문 때에는 마트 상품으로 바뀌었다가 그나마 그다음 달부터는 아이들 학원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며, 아버님 너무 죄송하게 됐다며 오늘처럼 택배로 배송을 시켰다. 그게 바로 지난달 일이었다.
박 영감은 그날 점심과 저녁은 도우미 여사에게 부탁하여 고등어구이를 연속으로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박 영감은 오늘 배달된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발라주시던 바로 그 맛과 견주어 뭔가 맛에서 아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첫 방문 때 며느리들이 자랑스럽게 펼쳐내던 연어보다는 백 배는 나으니 말이다. 같은 노르웨이산이라고 해서 똑같이 입맛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머리를 대고 오 분이면 코를 고는 박 영감의 꿈에 어릴 적 살던 집 안 모습과 마루 중앙에 펼쳐진 개다리소반이 보였다. 그리고 저편 주방 쪽에서 차 여사를 꼭 빼닮은 엄마가 고등어구이를 구워서 가지고 나오시는데 어쩐 일인지 밥상 앞에는 어린 자신이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낯선 아이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최 선생의 어린 모습이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엄마에게 저건 내가 아니라고 소리를 치는데 웬일인지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자기 모습이 실은 접시에 담겨있는 고등어로 변해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어린 박 영감, 아니 최 선생 옆에 앉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박 영감의 살을 발라서 밥숟갈 위에 얹어 주었다. 육신이 조각조각 나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박 영감은 이리저리 뒤척이며 나지막이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니..., 나 죽어요...” 그리고 그의 눈가에서 어쩌면 스칸디나비아반도 아래, 발트해의 짜디짠 바닷물과도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