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의 정기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십여 명의 부부 동반 행사였는데 그들은 강남의 고급 와인바 하나를 통으로 빌려서 자신들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굶주린 하이에나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우아한 교양인으로 보이길 원했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짧은 강연이 끝난 뒤, 테이블로 비싼 와인과 기름진 음식이 나왔고 이제 멋진 대화만 흐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타이밍이 됐다. 좌중이 뭔가 유쾌한 얘기가 감미료처럼 뿌려지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입 안에서 우물우물 씹던 스테이크 조각을 서둘러 넘기고 와인으로 입가심을 한 뒤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요즘 장안에서 유행하는 중년들의 로망이 있는데 뭔지 아시나요? 남성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이고 여성들은 '글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보란듯이 성공하셨으니 이제 번잡하고 혼탁한 도시를 떠나 어디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짓고 거기서 글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갑자기 정적이 흐르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냉랭한 공기가 흐르면서 음식이 급속하게 식는 듯 했다. 나는 순간 등으로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글이 아니라면 그림도 괜찮다'라고 말할까 고민하는데 한 여자가 입을 열더니 까칠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지금 그 외딴 곳에서 단 둘이서만 지내라는 말이세요?"
하필이면 와인바에 흥겹게 흐르던 재즈 음악도 멈췄고 정적이 와인처럼 깊어졌다. 나는 앞으로 여기에 더는 초대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이제는 다시 못 먹을 고급 스테이크를 서둘러 썰어 부지런히 입으로 나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