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대학 졸업식

손톱소설

by 김쾌대

캄캄한 고속도로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이 부슬부슬 내리는 빗발에 젖으면서 귤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새벽 5시를 지나는 이른 새벽이라 도로에는 하행으로 달리는 차들이 별로 없어서 윤철은 헤드라이트를 상향으로 올리고 앞을 주시하며 운전에 집중했고 조수석에 앉은 영미는 집에서 담아온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졸음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둘은 전국의 행사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게스트 가수팀이다. 천안을 지나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비가 그쳤고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 ‘청춘 대학’이라고 했지? 식사를 주문하고 앉으면서 윤철이 묻자, 영미는 카톡을 확인하더니 지난 6개월 동안 문화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진행됐던 '찾아가는 문화 활동' 내용, 이를테면 벽화사업이나 초상화 및 영정사진 그려드리기를 비롯한 노래 교실, 그림 그리기, 공예 프로그램 등을 주르륵 읊어 내려갔다. 오늘은 사업이 모두 끝나고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졸업식을 하는 날이었다. 윤철은 머릿속으로 선곡 레퍼토리를 어떻게 짜는 게 좋을지 계속 이리저리 고민하며 국밥을 떠먹고 있었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행사가 열리기로 한 마을회관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였다. 윤철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9시가 넘어서면서 할머니들이 한 분씩 회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셨다. 그들의 차를 발견한 어떤 분은 창을 똑똑 두드렸고 영미는 차창을 내리고 오늘 행사에 노래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답을 했다. 들어가서 기다리라는 말에 연신 사양하고 있는데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윤철의 ‘문예총’ 선배였는데 뭔가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윤철아, 큰일 났다. 오늘 행사를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새벽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집 마당 앞 실개울 가에서 빗길에 넘어지셨나 봐.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밭을 살피려다가 변을 당하신 모양인데, 사람이 죽은 일이라 사건일 가능성에 관해 판단도 해야 해서 난 지금 이장님하고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고 있어. 마치는 대로 일단 그쪽으로 넘어갈게. 난감한 소식이었다.


윤철은 차에서 내려 영미와 함께 회관으로 들어갔다. 스무 평이 채 안 되는 마룻바닥에 열두어 분의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계신 것과 다른 방에는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신 게 보였다. 둘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건넌방에서 이 마을 모임의 실세인 화자 할머니가 막내에게 한마디를 했다. -막내가 저 방 손님들께 커피나 한잔 타서 올리지. 이제 얼마 후면 칠순을 바라보는 ‘막내 할머니’가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커피 믹스 두 잔을 만들어 윤철에게 가져왔다. 좌불안석의 기분으로 얼른 받아들고 홀짝거리면서 분위기를 살피는데 모여 있는 할머니들이 문제의 사건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00이 죽었다메?

-글쎄 말여, 00가 죽었다네.

-날도 많은데 해필이면 오늘 죽고 지랄이랴?

-누가 아니래.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왜 오늘이냔 말여.


윤철은 안절부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자리가 이제는 점점 가시방석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행사를 망치게 된 망자에 대한 책임을 묻던 할머니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행사를 강행해야 하는 명분이 필요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오늘 워쩔껴?"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몇 초가 지났을까, 누군가 번뜩 한마디를 던졌다.


-저짝에 서울서 온 손님들도 있는데 시방 행사를 해야 하는 겨, 말아야 하는 겨?

-긍께 새벽부터 어렵사리 내려오신 분들인디 그냥 돌려보낼 꺼여?


”그건 경우가 아니제.“


조용히 듣고 있던 화자 할머니가 결정적인 한 마디로 단호하게 사태를 수습했다. 이로써 팽팽하던 긴장감은 가시고 작은 안도와 평화가 회관에 감돌기 시작했다. 딱 한 분, 오늘 새벽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순임 할머니에 반해서 그 이전에 몇 년간 교제하던 화자 할머니와 절교를 선언하고 순임 할머니와 새로운 의욕이 넘치며 알콩달콩 지내시던 홀아비 춘광 할아버지만이 창가 자리 아래에서 돌아앉아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며 먼 산을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밖에서는 새벽에 그쳤던 비가 지나가는 소나기가 되어 투둑투둑 처마를 두드리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회관으로 건너온 선배에게 윤철은 조용히 오늘 행사를 진행하셔도 될 것 같다고 얘기를 전했다. 할머니들에게 재차 물어서 확인한 선배는 윤철과 영미를 도와 음향 장비를 거실에 세팅하는 걸 도왔고 예정했던 것보다 한 시간 늦은 11시부터 졸업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간단한 경과보고와 시상식을 끝내고 모두가 기대하던 뒤풀이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왔다. 윤철은 선배에게 지난 6개월 동안 노래 교실에서 주민들에게 가르쳤던 노래 명단을 전해 받고 그 노래들 위주로 반주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반응이 뜨거운 노래는 <백세 인생>과 <내 나이가 어때서>였고, <돈타령>을 부를 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엉거주춤 단상 앞으로 나오더니 반주를 하는 윤철의 양말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끼워주시기도 했다. 대단원의 피날레는 <님과 함께>로 선곡을 했는데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라는 가사가 울려 퍼지자 올해 아흔다섯 된 최고령 할머니께서 ‘그럼 인제 나는 오 년밖에는 안 남은 거네’라고 외치며 깔깔 웃으시기도 했다.


무사히 행사를 마친 이후에 선배가 대접하는 점심을 먹고 차를 몰아 다시 서울로 거의 다다랐을 무렵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어수선한데도 정말 애를 많이 썼다는 인사를 다시 한번 하더니 지금 자신은 동네 할머니들을 모두 인솔해서 순임 할머니가 안치된 의료원으로 문상을 왔노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윤철은 아침에 뵀던 분들이 아침에는 신나게 놀아 젖혔지만,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 밤사이에 자신들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처지에 북받쳐서 지금은 분명 살붙이가 죽었을 때처럼 서럽게 통곡하고 계실 것이라고 옆자리에 앉은 영미에게 말했다. 요금소를 지나면서 비 그친 하늘을 보니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언제든지 소나기라도 내릴 것 같은 그런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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