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 코너 할배

손톱소설

by 김쾌대

아침 10시 이전에는 셔터를 올리고 장사 준비를 해야 한다. 전날 주문한 식자재들과 때에 따라서는 비품들을 식당 안으로 들여서 필요한 위치에 차곡차곡 배치하는 일을 시작으로 주방에서 그날 필요한 재료들을 다듬는 동안 사장인 나는 테이블 5개가 놓인 홀을 정성스럽게 청소하기 시작한다. 강남 가로수길 뒤편(사람들은 여기를 세로수길이라고 불렀다)에 파스타 가게를 오픈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주변에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지만 내가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태리 본토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처남이 주방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기도 하거니와 백화점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친절이(비록 어느 정도 가식적이기도 하지만) 몸에 밴 내 손님 응대 태도도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건물의 주인 되시는 '코너 할배'가 무슨 일이지 나를 잘 봐주셔서 월세를 올리지 않고 동결해 준 것도 큰 힘이 된 게 사실이다. 물론 그게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지만.

'코너'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은 3층에 입주하고 있던 디자인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점심시간에 자주 들러줘서 나와도 친했던 그들은 종종 코너 할배는 오늘 보이지 않는다는 둥 자기네들끼리 얘기를 나누면서 그 이름을 언급했다. 어느 날 나는 코너 할배가 누구냐고 물었고 그이들은 나에게 여기 건물주 할아버지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왜 코너냐고 묻자, (사실 나는 '우리 건물이 이면 도로의 모퉁이 코너에 아담하게 위치하고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가 보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건물주 할아버지가 미국 격투기 대회인 UFC에서 뛰고 있는 '코너 맥그리거'를 닮아서 그렇다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나서 나는 정말 크게 파안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너무 닮아서였는데 젊은 친구들의 재기발랄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코너 할배는 170㎝도 되지 않을 작은 키에 매우 다부진 몸매를 지니고 있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젊은 시절 아마추어 권투 선수였다는 소리도 있었다) 옷차림도 청바지에 티셔츠는 기본이고, 듬성한 머리를 감추려는지 야구 모자를 늘 쓰고 다녔는데 꼭 뒤집어서 모자챙이 뒤로 가게 해서 썼기 때문에 뒷모습만 보면 70대의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 코너 할배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건 앞서 말한 외모가 아닌 자신의 건물을 지나치게 아끼는 그의 유별난 행동 때문이었다.


우선 그는 아침마다 조경 가위를 직접 들고 건물 외관 무릎 높이로 만든 화단 나무들의 가지를 직접 매만지는데 얼마나 가지런하게 각을 맞춰 잘라놓는지 요즘 군대보다 더 단정할 지경이었다. 나무 다듬기를 마친 후 건물 주위에 행여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있으면 욕을 지껄이면서 주워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밖으로 낸 수도꼭지에 긴 호스를 연결하여 건물 외벽이며 바닥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뿌듯한 표정으로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옆 건물로 자리를 옮겨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우고는 탁탁 털어서 그 앞에 버리고 반드시 가래침을 한번 퉤 하고 뱉었다. 이것은 그가 옆 건물 일 층에서 영업을 하는 고깃집 박 사장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여서 분풀이를 하는 것인데, 작년인가 거기 손님들이 꽉 차서 그중 일부가 코너 할배가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여기 건물까지 진출하여 담배꽁초로 선사시대 패총처럼 만들어 버렸고, 다음날 두 사람은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며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얼마나 괴팍하고 깐깐한지 건물 계단 청소도 외부 아주머니를 쓰면 될 것을 갖은 잔소리로 사흘이 멀다 하게 갈아치우고 대신에 자기 부인되시는 사모님한테 궂은일을 시키곤 하는데, 그녀의 옷차림이 하도 형편없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청소부 아줌마라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 수전노이지만 그는 매우 집요한 사람이었다. 옆 건물 박 사장과 대판 싸운 후 그는 동네 파출소를 찾아가서 거기 소장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어 달에 한 번씩 소장 이하 파출소 경찰관들을 소집하여 맞은편 식당에서 회식을 시켜주었다. 그 식당은 박 사장과 지정학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동종 고깃집이었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코너 할배는 파출소 배 소장과 함께 가게 앞에 나와 담배를 나눠 피며 건너편 박 사장네 가게를 향하여 보란 듯이 어깨도 걸며 친분을 과시하곤 했다. 이럴 때면 가뜩이나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평소에 고함을 치듯 샤유팅하는 코너 할배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서 웃음소리가 동네가 떠나가게 울려 퍼지곤 했다. (어쩌다 박 사장네 가게에 차를 가지고 온 손님이 무심결에 우리 건물 앞에 잠시 정차라도 하다가 코너 할배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차의 클락숀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갖은 욕을 얻어먹기 일쑤였다)


그런 코너 할배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면이 하나 있었다. 주차장 쪽으로 길고양이들이 와서 밥을 먹곤 하는데 그 아이들 먹을 밥을 챙기는 일을 코너 할배가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엔초비 찌꺼기며 갈아놓은 스파게티 미트며 참치 샐러드 등을 보면서 우리 식당에서 캣맘을 자처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실은 코너 할배가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슬며시 우리 식당에 와서는 남은 음식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꼭 나에게 고양이 밥 공짜로 주는 덕에 임대료 올리지 않는 줄 알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하루는 불콰하게 취해서 오셨길래 도대체 왜 고양이들을 챙기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어려서 죽은 딸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는 술을 마셔도 절대로 식당이나 술집에서 먹지 않았다. 대신에 한 블록 아래 있는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서 소주에다가 조미김이나 멸치 제품 같은 값이 싼 안주를 집어 먹곤 했다. 오늘은 내가 뭔가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르는데 코너 할배가 술을 마시며 통화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보였고 그는 두 병째 잔을 들이키고 있었는데 워낙 큰 목소리 때문에 내 귀에 그가 말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야 이눔아, 봉철아. 아무리 병원 진료가 바빠도 그렇지, 명절 때나 겨우 코빼기 비추고 뭐 하는 짓이냐(...) 술 마셨느냐고? 마셨지! 오늘 내가 속이 상해서 못 살겠다(...) 늬 어메가 며칠 전에 동네 친구들하고 꽃놀이 간다고 짐 싸서 나갔다. 내일 온다고 하는데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내가 아주 미치겠다(...) 바람을 무슨 며칠씩이나 쐬고 온다는 거냐? 안 그래도 코로나 극성일 때도 그 여편네들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우나 찜질방에 가서 생돈을 그렇게 물 쓰듯 펑펑 쓰더니 이제 아주 간이 부어서 남편 알기를 발가락의 때보다 더 우습게 아는 거지(...) 닥쳐, 이눔아. 너 내가 전화한 건 이번에 내가 그냥 안 넘어갈 거니까 그리 알라고 미리 알려주려고 걸었다. 아까 내가 배 소장한테 전화해서 내일 오라고 했다. 아마 내가 큰 사고를 칠 것 같은데 신문에 기사 나가지 않도록 막아달라고 했다(...) 시끄러워 이눔아!! 사고 나면 동네 창피한 게 아니라 네 놈 잘난 신상에 행여 해가 될까 봐 그러는 거니까 그리 알어 인마. 봉철아, 넌 절대로 네 동생 잊고 살면 안 된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순옥이 제사는 절대로 잊고 지내면 안 된다 이 말이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봄비가 장맛비처럼 내려서 점심 장사를 공치더니 비가 그친 저녁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런 날은 평소보다 일찍 마감하고 퇴근을 하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된다. 처남을 먼저 들여보내고 간단하게 장부 정리를 마치고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뜻밖에도 거기 코너 할배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길고양이들의 밥그릇이 놓여 있는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등을 보이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서너 마리의 아이들이 모여서 오물거리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 골똘하게 그 모습을 보느라 코너 할배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어제 들었던 통화 내용 때문에 행여 오늘 무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아는 기색도 못 하고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서서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담배를 다 피운 코너 할배가 예의 그 탁탁거리는 손짓으로 꽁초를 털더니 습관적으로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먹어, 이눔들아. 늬들은 좋겠다... 날씨도 추운데 순옥아, 잘 지내고 있는 거냐...'라고 읊조린 것 같은데 바람 소리가 커서 내가 분명하게 들었는지는 사실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고양이들의 찹찹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가운데 싸움닭 코너 할배의 어깨 위로 연분홍 작은 꽃잎들이 우수수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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