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지면서 손님들이 거의 돌아갔다. 아들 내외는 저희네 이모들과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돌배기 손녀는 아마도 사돈네에 맡겼으리라. 서른이 목전에 다다렀지만 아직 연애 기별은 감감무소식인 딸아이는 저쪽 구석에서 컵라면을 앞에 놓고 익어가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식당의 조명 밝기가 필요 이상으로 환하게 느껴져서 기봉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양쪽 눈에 갖다 대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아마도 노안으로 인해 안구의 조직과 기능이 약해져서 그러리라 생각했다. 초저녁부터 손님을 응대하느라 겨를이 없었던 차에 이제 한가해지면서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음식은 모자람 없이 차려져서 한술 뜨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왠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기봉은 딸아이 쪽으로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기봉의 기억 속에는 십 대 소녀의 모습으로 남은 딸아이는 어느새 어엿한 숙녀티가 흐르는 자태였는데 곁으로 다가오는 아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핸드폰 속 영상에 정신이 팔려 있는 중이었다. 기봉은 딸아이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직은 내키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어색한 쪽은 기봉도 마찬가지였다.
기봉이 마흔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처자식을 두고 집에서 나와 강원도에 있는 산으로 갔다. 가출을 감행한 것이다. 그해 정월에 기봉의 노모(老母)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여든여덟 살이었던 그녀는 나이 사십에 손이 귀한 집안의 장손인 기봉을 어렵사리 낳았고 기봉이 태어나면서야 비로소 시집에서 소박맞아 쫓겨날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봉이 중학교에 진학하던 즈음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고 그녀에게 기봉은 모든 것이 되었다. 낮에는 남의 집 허드렛일이며 삯바느질이며 밤낮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그이에게 기봉은 예수님이었고 부처님이었고 천지신명과도 같았다. 그렇듯 어머니에게 구세주와 같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기봉은 서울로 유학하여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치열한 대입 경쟁의 틈바구니에서도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으로 그 어렵다는 SKY 명문대 중 한 곳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합격 통지서를 들고 고향을 방문하던 날, 마을 어귀에는 축하 플래카드가 걸렸고 환갑을 한 해 앞둔 기봉의 엄니는 학자금으로 모았던 적금을 깨서 겸사겸사 동네잔치를 벌였다. 기봉이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기봉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배와 함께 작은 오퍼상을 시작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고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한 일이나, 혼기를 맞아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영숙과 헤어지고 어느 친척께서 주선하신 맞선자리에서 만난 미란과 혼인을 맺게 된 것도 홀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기봉에게 매달리며 사정했던 연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주변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기봉은 과묵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기봉은 사실 학창 시절, 고생하시는 어머니만 아니었다면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없는 현실은 늘 구차하고 힘겨웠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날에 기봉은 생일 선물로 받은 기타를 치며 하숙방에서 외로움과 절망을 달랬다. 머리가 좋았던 기봉은 독학으로 악기를 다루는 법을 익혔지만,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감수성은 물리적인 음률의 파동에 산이 울리는 소리와 새가 그 위로 날아가는 날갯짓과 비가 오고 눈이 오는 풍경과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떨림까지 담아내곤 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영숙이 기봉에게 다가와 품에 안겼던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토록 섬세한 감정을 지닌 사람은 척박한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억척스럽고 질긴 모정(母情)의 끈을 잘라내기 어렵다. 영숙과 헤어지고 만나 결혼한 미란도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둘 사이에 뜨거운 연애 감정이나 하다못해 애틋하고 소소한 부부 사이의 정(情)을 나누는 일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결혼기념일에 기봉이 소담스러운 꽃다발을 사 들고 귀가했을 때, 미란은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 한 칸짜리 서민아파트 거실에서 받아든 꽃을 벽에 던지며 제발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던 일도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부동산 중개인 일을 하던 미란의 계약 하나가 하필이면 그날 어그러지며 미란이 꼬박꼬박 붓던 주택 청약부금 통장에 납입하는 스케쥴이 꼬였다는 사실을 기봉이 알 도리가 없어서 그날 밤 집을 뛰쳐나온 기봉이 친구가 운영하는 7080 음악 홀로 달려가 밤새 술을 마시며 기타를 친 일도 역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그해 가을에 기봉이 집을 나와 강원도로 떠난 이유를 직장에서 실행한 건강 검진 결과 폐암 초기로 판명되어 수술받았기 때문이고, 이후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난 것으로 주변 사람들은 추측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에 기봉이 미란에게 이제부터 자신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며 전 재산을 포기하고 집을 나갈 것을 통보한 것과, 어렵게 수소문해서 찾아낸 영숙의 소재지로 찾아가 옛사랑을 만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 것과, 포털 사이트의 암 환자가 모인 카페에서 평창에 있는 단식원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있다는 정보를 얻어 면접을 하고 취업한 일과, 나중에 큰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아비인 자기를 찾아와서 술 한잔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나는 평생 마음속에 무거운 쇠말뚝 두 개가 박혀서 지냈는데, 하나는 네 할머니이고 하나는 네 엄마였다'라는 대화를 주고받은 일과, 기껏해야 남편이 이삼 년 정도 밖으로 돌다가 결국 돌아올 것이라고 여기며 의연하게 재산을 불리며 지내던 미란이 십이 년이란 세월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홀로 지내다가 재작년에 대장암을 얻어 항암치료를 했고 그 소식을 들은 기봉이, 어느새 환갑이 다 된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심하게 방이 세 개나 있는 강남 브랜드 아파트의 방 하나를 기봉이 쓰도록 허락한 일과, 자기가 열다섯 살 때 가정을 버린 아빠가 스물일곱 살이 되어 다시 돌아왔을 때 딸아이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하숙생을 대하듯 기봉과 한 지붕 아래서 지냈다는 그런 일들을 주변의 그 어느 누구도 자세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기봉이 환갑을 맞이했을 때도 친지들을 초대하는 잔치나 가족들 간의 기념모임을 치를 상황은 허락되지 않아서 별다른 행사 없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오늘 비로소 미란이 허락한 자리가 마련되어 많은 손님들이 다녀간 차였다. 컵라면을 후룩후룩 떠먹으며 눈길을 주지 않는 딸아이를 뒤로하고 기봉은 몸을 일으켜 미란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거기에 환하게 웃고 있는 미란이 보였다. 기봉의 눈에 방 한편에 놓인 꽃 무더기도 보였다. 그는 그중에 한 송이를 뽑아 들고 미란의 사진 앞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꽃향기처럼 향긋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뭔가 썩으면서 나는 악취도 아닌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고 그 향기는 기봉의 코끝으로 전해졌다. 기봉은 미란과 자신의 사이에 이생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명확한 거리에서 풍기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엄연한 체취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분향을 한 뒤 아내에게 헌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찡그리고 화나고 울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훨씬 더 많이 짓고 살지만, 마지막 영정 사진 속에서만큼은 그토록 환하게 웃는 사실이 새롭고 놀라워서 그 앞에 그만큼 환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