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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일지

매생이국을 먹다가

오늘 일지

by 김쾌대

바람 차가운 날,

매생이국을 끓였다.

후후 입김 불어

후루룩 떠먹다가

잠시 숟가락을 멈춘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이다.


흐드러지게 풀어진 건더기는

늙은 어미의 앞섶 사이로 보이는

볼품없는 젖무덤을 닮았다.


오늘 같은 저녁이면 적적한 밥상 앞에 놓고

씹히지도 않는 짠지 쪼가리 우물거리다가

소반 위 한 켠에 탁, 뱉을지도 모를 일이다.

옛날 시집살이하며 구박받았던 기억의 파편도

끝내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하고서는 말이다.


겨울 끝자락에서 그녀는

한때 꽃처럼 피었던 청춘의 설렘과

지난날 미역 줄기처럼 낭창했던 꿈들을

화사한 홈쇼핑 화면 너머 매력적인 상품처럼

다시 주문하여 받아보고 싶은 지도 모를 일이다.


노년에는 매생이처럼 풀어헤쳐졌지만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끈적한 열망이

무너져가는 가슴 속에서도 흐느적거리고 있다.

그래…

젊은 시절 미생(未生)의 시간을 지나

어느새 날이 저문 이제는 매생(每生),

매 순간마다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미끌미끌한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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