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소년이 온다_한강 (창비, 2014)

책을 읽고

by 김쾌대

문예지 <황야문학> 34호에 초대받아 기고한 글이 실려 발행되어서 전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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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부터, 소년이 온다


<들어가며>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의 3곡에는 지옥의 문(門) 위에 쓰인 유명한 글귀가 나온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도시인 광주에서 지옥문이 열렸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그곳에서 지옥을 체험한 여섯 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후(死後)가 아닌 당시, 살아생전에 지옥의 고통에 짓눌리다 죽어간 사람도 있었고, 요행히 생존했지만 이후 지옥보다 더 끔찍한 삶을 보내고 있거나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에 나오는 여섯 명의 사연이 흰 눈처럼 담담하고 차갑게 내리고 있었고, 독자로서 나는 읽어 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맛봐야 했다. 책장을 덮고 이제 그들이 겪었던 지옥의 맛이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씩 정리해 보려고 한다.


1장. 어린 새 (동호 이야기)


열다섯 살, 어린 소년이 거리에서 함께 놀던 친구와 아침저녁으로 풍경처럼 마주치던 도시의 사람들이 총탄에 맞고 몽둥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올무에 잡힌 짐승처럼,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그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국가폭력이라는 무저갱에 빠져 인질처럼 포획되고 말았다. 상무관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유족들에게 인계하는 작업을 돕는 소년 동호의 코를 파고드는 시취(屍臭)처럼, 그의 의식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그를 괴롭힌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17)


동호의 마음속에는 친구(정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총알을 뚫고 그의 시신을 끌어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득했고, 죽은 뒤에도 육체를 떠나지 못하고 시신의 곁에 붙잡힌 혼처럼,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청에 남게 된 사람들의 양심처럼 동호의 무의식에 남아있다가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가위에 눌리거나, 혹은 깨어서도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생시에도 불쑥불쑥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올라 동호를 괴롭혔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p.45)


동호의 지옥에서 그는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부조리의 덫에 걸려 퍼덕이는 어린 새와도 같았다.


2장. 검은 숲 (정대 이야기)


동호의 집에 누나(정미)와 함께 세 들어 살던 동갑내기 친구, 정대는 지옥문이 열리던 최초의 시간에 거리에서 총을 맞아 죽은 뒤 트럭에 실려 다른 시신들과 함께 이름 모를 곳으로 옮겨졌다. 군인들은 주검들을 직각으로 교차하며 탑을 쌓듯이 차곡차곡 모아 올렸고, 육체를 이탈한 혼(魂)들은 통념에 따라 저승으로 떠나 황천길로 떠나지 못하고 자기 육체 주변에 머무는데 정대 역시 그랬다. 죽은 넋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물질로 이루어진 자기의 살갗과 머리털과 근육과 내장이 끌어당기고 있는 인력(引力)에 붙잡혀 시신 탑에 어른거리는 나무그림자처럼 서성이고 있는데, 아직 망각의 강인 레테를 건너지 못해 기억은 남아있는 처절한 상태이다. 그들이 겪는 지옥의 극심한 고통은 죽어서도 아직 소멸(消滅)하지 못하여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셋이 돼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데, 그러한 자유가 아직 허락되지 못하고 있기에 정대는 괴로워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8)


저승으로 건너가 억울한 기억을 다 잊고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신세만큼 비참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타임 루프에 걸려 영원히 같은 현실을 반복하는 영겁의 무료함과도 같고, 죽지 않고 영생함을 얻은 육체가 듣고 보고 겪어야 하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만큼이나 검은 숲의 그림자처럼 들이닥치는 국가폭력이란 괴물의 시작과 끝도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지옥의 집행관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 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빡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p.54)


밑도 끝도 없는 미로를 헤매는 영혼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방랑을 마치고 쉬는 일일 것이다.


3. 일곱 개의 뺨 (은숙 이야기)


지옥문이 열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시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일을 하던 은숙은 그때 살아남았지만, 지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다단계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교정지를 가지고 보안사의 검열관에게 원고를 제출하고 그 결과를 다시 출판사로 가져와 인쇄를 진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녀가 현재 겪고 있는 지옥에서는 검열이란 공기가 탁하게 퍼져있다. 검열이란 무엇인가? 정신세계가 외부에 의해 침범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가 타인의 폭력에 의해 짓밟히는 것과 모양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수요일 오후 네 시경이었다. 같은 자리를 연달아 세게 맞았기 때문에, 몇 번째 따귀였는지 모르지만, 오른쪽 광대뼈 위로 실핏줄이 터졌다.” (p.65)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먼저 죽은 자들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지내게 된다. 기본적으로 멘탈의 면역 시스템이 파손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의 침범이 닥치면 무너지는 위험에 취약해질 수밖에는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신은 방어기제를 높이고 눈을 감고 지내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서 마지못해 생존해야 하는 서글픔과 분노가 그림자처럼 늘 따랐다.


“··· 동호야. (중략)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p.102)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95-96)


육체가 고문으로 짓밟히고 정신이 검열로 인해 침범당하는 자에게, 지옥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불신(不信)의 칼날로 통치의 위력을 행사하고야 만다.


4. 쇠와 피 (진수 이야기)


광주에서의 학살이 있은 지 이제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서 지옥은 점점 잊혀지겠지만, 당시 생존한 피해자들의 시계는 그때 이후 흐르지 않고 멈춰있게 된다. 시계가 멈춘 것은 고문을 당하면서 의식이 그 사건의 블랙홀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성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친다거나,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 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하여 사타구니에 굵은 개미들이 물어뜯게 하는’ 그런 고문 말이다.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에 교차시켜 끼우고 비틀어서 피와 진물이 흐르고 나중엔 그 자리에 하얀 뼈가 드러나도록 만들고, 식판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이 함께 먹게 하여 서로 적대적인 대상으로 만들려는 자들이 노리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파괴와 그를 통한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향한 혐오이다.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아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19)


계엄군에 저항한 사람들에게는 인간으로 지닌 양심(심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을 때, 느닷없이 자기들 안에 있는 깨끗한 무언가에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그렇게 각성한 양심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그들은 도청을 지키면서 결국 총 한 발을 쏘지 못하고 사살당하거나 붙잡혀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사람들은 점차 인간으로서 느꼈던 그 고결하고 숭고한 체험이 점점 퇴색되면서 체념하고 복종하고 공허감에 시달리다가 끝내 진수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남은 사람들도 죽지 못해 살아가면서 날마다 끝나지 않은 질문을 하며 지낸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5)


그들은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肝)이 뜯기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과도 같은 지옥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5. 밤의 눈동자 (선주 이야기)


이제 시간은 흘러 20년이 지났다. 그때 동호와 은숙과 진수와 함께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선주는 어느덧 40대의 중년이다. 중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일을 시작한 선주는 열여덟 살까지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조합의 아래 일을 맡아서 활동하다가 데모 현장에서 부상을 당해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서 미싱사로 취직했다.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였던 선주는 광주에서 지옥의 참상을 목격하고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다. 선주를 '빨갱이년'이라고 불렀던 그들은 차마 입으로 옮기기 어려운 끔찍한 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다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 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후략)” (p.167)


사태가 진정되고 석방되었던 그녀는 이제 더는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라는 노래를 마음속에서 지워야만 했다. 그녀는 시시때때로 높은 곳에서 갑옷을 입고 떨어지거나, 빙하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악몽을 꿔야 했다. 그녀는 일상에서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되었고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운 고통을 겪는다. 인간으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존엄성이 부서진 그녀는 결국 주변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운동권에 속해 저항하던 일마저 그만둔 채 세상 밖으로 도피하여 전향자의 삶을 살아간다.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p.167)


그녀는 현재 일하는 단체가 견제와 감시를 하는 ‘서서히 죽이는 것들’, 이를테면 방사능 물질들, 첨가물들, 산업용 독성물질들, 농약과 화학비료들, 생태계를 파괴하는 토목사업들처럼 자기 몸에 남아 육체를 태워도 뼈에 남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지내는데, 그런 그녀는 이따금 누군가 자신의 방문 앞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는 환청을 듣곤 한다. 그녀는 마지막 날에 봤던 어린 동호가 지금도 자기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p.177)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지옥으로 먼저 떠난 소년이 살아남은 자가 겪는 지옥으로 말없이 온다.


6. 꽃 핀 쪽으로 (동호 엄마 이야기)


동호 엄마에게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와 도청으로 향했던 새벽에 그녀는 현장에 없었지만,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끔찍한 지옥을 경험한 것은 그녀였다. 왜냐하면 다른 희생자들이 받은 고통은 현재(학살 당일)이거나 혹은 과거로부터의(5년 전,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현재진행형이었지만, (다시 말해 현실이라는 시공간에서의 좌표값을 갖는 실존의 문제였지만) 다르게 말해서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대로 미래를 강탈당하여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상황이었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미에게 이제 현실은, 즉 실제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공간의 구분이 뭉개지고, 일상과 꿈의 구별이 뒤섞여 버린, 영화 <인셉션>에서 등장하는 개념인 '림보'의 나락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녀는 깨어서 꿈을 꾸고 실재하는 대상이 헛것으로 보이는 비현실의 세계, 어쩌면 지옥의 맨 마지막 바닥 층위로 내던져진 셈이다.


“하얀 하복 반소매 아래 호리호리한 팔뚝이 영락없이 너였단게. 좁은 어깨하고 길쭉한 허리하고 걸음걸이가, 고라니같이 앞으로 수그러진 목이 꼭 너였단게.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p.178-179)


그녀의 눈앞에는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게 현현(顯現)되어 나타나 현재가 되고, 이미 죽어서 이승에 없는 자식의 존재가 지금 여기 기망이 아닌 현존(現存)이어서 그녀는 시시때때로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산속에서 길을 잃고 무심코 빨려 들어간 별천지에서 허깨비처럼 헤매며 떠도는 것이다. 넋이 나간 영혼은 그럼에도 문득 또렷하게 의식적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광주 도청에 이어 용산 망루 위에서, 팽목항 세월호 배 안에서, 이태원 거리에서 그렇게 무너진 경계에 내몰려 심연보다 깊고 캄캄한 곳에서 ‘주황빛 촛불처럼,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처럼 파닥이는’ 넋들이 소설의 문장을 통하여 오늘 우리 곁으로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맺음말>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데에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조각상은 과연 어떤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런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지나 버린 사건에 개입하여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한강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며 소설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벼락같이 한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ㅡ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ㅡ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2025년 새해를 맞아, 계엄 선포와 이후 탄핵 정국으로 다시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와 탄식과 비탄과 분노로 일상이 무너진 우리에게 뒤집힌 저 질문이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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