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피아노 치는 여자_엘프리데 옐리네크 (문학

책을 읽고

by 김쾌대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인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었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음악 교사를 하는 에리카와 그녀를 자기 인생의 분신으로 자기 욕망을 딸에게 투사하는 어머니, 그리고 에리카를 흠모하며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열 살 정도 연하의 대학생인 클레머가 그들이다. 주인공들은 일그러진 관계를 형성하며 지내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어머니와 딸, 연상의 여선생과 연하의 남제자, 그리고 에리카의 이드(id)와 에고(ego) 사이에는 긴장감이 시종 흐르고 있다. 그 기운은 밝고 건강하지 못한데 이유는 두 대상 간에 온전한 합일이 아닌 왜곡되고 변형된 폭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리카의 어머니는 서른 중반에 이른 딸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행여 딸이 독립하여 자기 품 안에서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시간 단위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면서 그녀의 정신에 가스라이팅을 가한다. 세뇌당한 딸은 심심찮게 어머니와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고, 감시의 눈을 피해 근처 공원에서 열리는 핍쇼(peep show)에 찾아가고 혹은 온갖 도구를 이용해서 자기 몸에 자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녀는 타인들과의 관계 맺기에 서툴며 홀로 자기 영역에서 고립된 상태로 지내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기에서 뒤틀린 성욕으로 인한 '사도마조히즘'의 정신 착란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에리카를 흠모하는 청년 클레머는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고 동시에 수줍게 에리카의 주변을 배회하며 연정을 호소하지만, 에리카가 그의 애정을 볼모로 자신을 정신적으로 통제하려고 하자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하는 행태를 보인다. 클레머에 의해 강간을 당하기까지 한 에리카는 칼을 집어 들고 복수를 위해 그를 찾아가지만 결국 자기 어깨를 찌르고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나는 소설을 읽고 문득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언급한 '합일적 사랑'에 관해 떠올리게 되었다. 거기에서 프롬은 미숙한 사랑과 대비하여 대상과 온전한 합일에 이르는 사랑의 기술을 얘기하면서, 네 가지 필수적인 능력에 대해 기술했다. 그것은 바로 '관심'(care), '책임'(responsibility), '지식'(knowledge), 그리고 '존중'(respect)인데, 이는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의 덕목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는 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지식이나 존중이 결여되어 있어서 관심이 아닌 맹목으로, 책임이 아닌 통제로 왜곡된 모습을 보인다. 클레머는 젊은이 특유의 무책임함으로 무장한 채, 보살핌이 아닌 성적 호기심으로서의 관심을 가지고 뭇 여성들에게 어슬렁거리며 바람둥이 기질을 뿜어내고 있다. 스포츠에 관한 지식은 출중할지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전반에 걸친 지식이나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에리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상실한 채 방황한다. 거기에는 음악에서 보이는 어떠한 조화(하모니)는 자리 잡지 못한 채, 타인에게 가학적이고(sadist) 스스로에게는 더욱 폭력적인(masochist) 행위를 되풀이하며 지내고 있다. 음악이나 섹스에서 숭고하게 추구하는 '충만한 합일'을 통한 자아와 세계의 확장이 아니라, 자기 당착적/모순적/왜곡적인 관계의 어그러짐 속에서 고통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폭력'의 태동이 관계 내에서 어떻게 태동하는지를 감지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녀를, 음악을, 섹스를, 연인을, 사랑을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미숙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안이한 대처가 바로 폭력적인 인격으로 자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과 지배 엘리트층이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는 상식 이하의 졸렬하고 비겁한 모습도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점도 밝히고 싶다. 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폭력이 주변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시대를 지내고 있다. 아마도 작가인 옐리네크 역시 당대의 자기 주변에서 바로 그러한 부조리한 폭력을, 특히나 가정적 ·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안과 공포를 작품에서 대변하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녀는 관계의 왜곡(distortion)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래서 어쩌면 과감하게 변형된 문체로 그녀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우아한 클래식이나 안정적인 발라드 음악에 대항하여 전자기타에서 '징~징~징~'하며 디스토션 이펙트를 삽입하여 완성되는 록(rock)이나 메탈(metal) 음악처럼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또 누군가는 열광하게 만드는 힘과 에너지가 있다. 생각해 보면 록이나 헤비메탈은 '저항의 음악'이다. 그녀는 문체에서도 저항으로 맞서고, 그리하여 전 생애에 걸쳐 억눌리고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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