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사소한 일_아다니아 쉬블리 (강, 2023

책을 읽고

by 김쾌대

1. 이 소설은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고국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배경은 1948년 5월 15일부터 1949년 2월 24일까지 지속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1차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9년 8월 9일부터 닷새 동안 이집트와의 국경선 지역에서 유태인 군인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끝내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소녀의 이야기이고, 2부는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뒤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하는 어느 여자가 그때 그 소녀가 당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사건이 벌어진 지역으로 찾아갔다가 역시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작품 속에 배치해 놓은 여러 감각, 청각과 후각과 촉각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2부에서 나오는 '지도'와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주는 메타포에서 이 소설이 국지적인 지구 변방의 서사를 뛰어넘어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곳곳의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2. 개 짖는 소리, 휘발유 냄새, 껌을 씹는 일


소설의 전편을 흐르며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1948년 이후 지금까지도 들리는 폭격 소리와 대비된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비하여 개가 짖는 소리는 '사소한' 소리이다. 왜냐하면 외부 세상에서 고막을 때리는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청각에 맞서는,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양심의 호소나 울림과 같은 성격의 파동이기 때문이다. 개 짖는 소리로는 건물이 부서지거나 사람이 죽지 않는다. 다만 신경이 거슬릴 따름이다. 그렇게 미세한 자극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독자들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은 일종의 양심에 호소하며 양심을 일깨우는 소리이기도 하며, 동시에 도대체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역사와 신적인 존재가 주는 경고의 소리이기도 하다.


휘발유 냄새는 또 어떤가? 1부에서는 유태인 군인들과 포로로 잡힌 팔레스타인 소녀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진동한다. 소녀의 머리에서 자라는 이(蝨)를 죽이기 위해 쏟아부은 휘발유는 썩어가는 육체와 (또한 정신)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세례의 도구와도 같아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지만, 정작 상처를 입어 자기 몸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소대장은 그 휘발유 냄새가 소녀의 몸 냄새와 다름없어서 역겹기만 하다. 왜냐하면 소대원을 이끄는 장교는 매일 저녁 자신의 몸을 닦아내며 자기 몸에서는 고상한 비누 냄새가 풍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누는 그래서 위선의 냄새이자 기만의 냄새이다. 그래서 장교는 입으로는 조국의 신성한 땅을 지킨다는 임무를 제법 엄숙하고 결연하게 발설했지만, 소녀를 강간하고 부하들이 같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방관했다. 작가는 휘발유 냄새를 통하여 이를 고발하고 있다.


2부에서 소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떠난 여주인공은 가는 길에 어느 소녀가 집요하게 파는 껌을 두 통 사게 된다. 그리고 2부 내내 껌은 시시때때로 소설 속에서 등장한다. 무엇과 대비되어, 그렇게 나타나는가? 나는 팔레스타인 '나림' 지역에 위치한 기록보관소와 박물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록과 유물은 과거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오늘 지금 그녀에게 생생한 감촉으로 소녀가 겪은 고통과 비극을 느끼게 만들 수는 없다.(여주인공은 결국 그곳에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철수한다.) 마지막 순간에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총을 맞아 사망하기 직전에도 여주인공은 껌 한 통을 찾기 위해 손을 주머니에 찔렀다.


개가 짖는 일이나,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는 일이나, 껌을 씹는 일은 사소한 일이다. 폭격 소리를 듣는 일이나, 비누 냄새를 맡는 일이나, 박물관에 방문하는 일에 비하면 말이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위생과 교양에 관한, 역사와 사상에 관한 거대 담론은 사람들을 잠시 동안은 흥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아 후대에 세상을 바꾸게 하는 생명력을 전하는 것들은 평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미력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아니겠느냐고 작가는 독자에게 냉정하고 차분하게 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1974년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출생한 그녀는 영국 이스트 런던대학교에서 '미디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주제는 '대 테러전에서 시각 매체의 역할'이었다. 그녀는 시각 이미지가 대중들을 기만하고 선동하는 현상에 대해 의도적이며 비판적으로 청각과 후각과 촉각을 동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3. 지도와 경계 뛰어넘기


이 소설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도는, 1948년 이전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이후에 이스라엘이 만든 새로운 것으로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두 종류의 지도를 차에 싣고 가면서 번갈아 확인을 하며 목적지를 찾아서 간다.


전쟁을 일으키고, 통상을 하고, 문명을 일으키고, 그러다가 강간까지도 서슴지 않는 부류의 인간들은 결국 소유욕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자들이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자기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지도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 속 새로운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여러 도시들과 산천과 바다 등은 사라지고 없었다. 힘이 없어진 주체들은 그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강한 힘은 약한 힘에게 망각을 강요하고 그 앞에서 대다수는 그런 부당한 대우에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 작가는 바로 그런 현실을 소설 속 지도를 통해서 고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계 안에서 굴종하며 지내지 말고 과감하게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밖으로 나오라고, 나와야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선동하지는 않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건, 우리 대다수가 비겁한 무언의 침묵을 지내는 일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12.3 계엄이 터지던 날, 대한민국에서 경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서 탱크 앞과 군인들 앞에서 저항했던 시민들 말이다. 얼마 후에는 수도권의 경계인 남태령에서도 영하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항거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군인들은 총칼을 들고 있었고, 장갑차와 헬기가 무섭게 버티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대부분 맨손이거나 야광봉 같은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맞섰다. 그렇게 사소한 일들은 팔레스타인을 넘어서, 과거를 건너서 지금도 우리 곁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거대한 일들에 정신이 팔려 미처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한 노파가 환영처럼 나타난다. 여주인공에게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와도 같았던 이 존재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다. 그걸 알아차리는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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