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 스러져가는 마지막 촛불이 흔들린다>
스웨덴의 어느 작은 마을, 주인공인 '보'는 올해 89세 된 노인이다. 점점 기억력이 깜빡깜빡하면서 의식은 불투명하고, 바지에 소변을 지리며 요양변호사의 손길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아내는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인근 요양원으로 옮겨졌고, 하나뿐인 아들 '한스'는 손녀인 '엘리노르'와 함께 인근에 살며 시시때때로 아버지를 찾아와 동정을 살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임종을 기다리는 그에게 유일한 낙은 반려견인 '식스텐'과 오랜 친구 '투레'와의 교감이다. 소설은 5월의 어느 아침에 시작하여 10월의 어느 날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특별할 것 없었던 여름날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에게는 하루하루 남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각별한 사건들이 그치지 않고 일어난다. 아들은 그가 사랑하는 반려견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고 있고, 교대로 찾아오는 요양보호사 중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아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발견되기도 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있는 요양원에 방문하여 행여 그녀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 바랐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오기도 한다. 믿고 의지했던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사실 그 친구가 자기에게 숨겼던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런 일들로 인해 떠오르게 되는 지난날 회상에 실려 오는 회한과 곧 들이닥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항상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 알고 있었고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어쩐 일인지 예전처럼 확신을 할 수 없다." (13쪽)
"평생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었던 당신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나 때문에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눈빛에 담긴 분노는 그동안 당신에게 소리쳤던 내 모습을 상기시켰기에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아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가 그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145~146쪽)
"우리 아들은 전기요금 고지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앉아 있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나는 온수기의 물을 다 쓰지도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 (200쪽)
육체적으로는 쇠약하여 걷기도 힘들고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형편이지만, 아직 꺼지지 않고 흔들리는 의식을 그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비록 아들을 비롯해서 요양사와 기관에서는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지만,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마저 박탈당한 채 동물처럼 아무 저항 없이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고 싶다는 내용이 소설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그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과의 추억이 담긴 물품이기도 하고, 추억 그 자체이기도 했다. 우리는 젊은 시절 무엇인가를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느라 미처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 녘이 찾아오고 어두워지며, 이제 곧 별이 떠오르는 시간이 되면 비로소 자기가 걸어 온 삶에 대해 뒤돌아보며 성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스카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타들어 가는 듯 아픈 마음을 감은 눈꺼풀을 뒤에 숨겼다. 나이가 들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물은 대부분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22쪽)
"식스텐이 고개를 들고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부스테르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처럼 식스텐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괴로웠다. 식스텐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나를 믿어도 된다고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식스텐을 배신하고 실망감에 빠뜨렸다." (326쪽)
"목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문득, 당신과 어머니가 옳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삶에서 놓쳤던 기본적인 그 무언가를 당신과 어머니는 이미 이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390쪽)
이 소설의 전편에 흐르는 하나의 큰 주제가 있다. 그건 바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긴장감이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주인공은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들은 일종의 애증 관계처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주인공은 아들이 손녀와 맺는 개방적이고 직설적인 부모·자식 간의 교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애증 관계란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양가감정>에 속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놓여 있다. 자기를 빼닮은 모습이면서도 동시에 자기와 엄연히 다른 타자로서의 존재를 대하며 주인공이 겪는 그러한 감정 상태는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 형태이다. 경영학 용어로 말하자면, 두 존재는 서로 <상호 독점> 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 벗어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왜냐하면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주인공의 어머니가 말했던 "우린 운명에 도전하면 안 돼."라는 순응이자 체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이자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되, 거기에 마냥 복종하지 말고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삶이 우리에게 명하는 요청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사람이 한스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를 내 곁에 두고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겉으로는 심술궂고 무뚝뚝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437쪽)
"나는 어머니에게 살아생전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너무나도 후회했다. 어머니는 노인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 말을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노인에게 향하는 분노를 어머니와 나 사이에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도 진심으로 행복할 수 없었다." (446쪽)
"우리 아들을 보고 있자니 노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스와 내 얼굴에는 노인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특히 턱 부분은 우리 세 명 모두 비슷했다." (447쪽)
"그럼에도 그(아버지)가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인정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눈빛을 바랐던 것이다." (4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