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0. 들어가며
소설 <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중단편 모음집을 읽었다. 표제작인 '필경사 바틀비'를 비롯하여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이상 단편) 및 '빌리 버드'(중편) 등 총 다섯 편의 작품들이 수록된 이 책에는, 19세기 미국 사회를 풍미했던 '어두운 낭만주의' (Dark Romanticism) 작가였던 허먼 멜빌이 모비딕 이후 한 단계 깊어진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 멜빌의 후기 작품들은 동시대 '어두운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인 나다니엘 호손이나 에드거 앨렌 포가 탐구했던 인간 내면의 심리적 악(죄, 광기)에 대한 천착을 넘어, 악의 원천을 외부의 사회-제도적 구조와 근대적 시스템의 폭력성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간략하게 각 작품에 나타난 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1. 필경사 바틀비
주인공 바틀비는 직장에서 상사의 요청에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직장(사회) 내 시스템과 노동까지 거부한다. 이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비인간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전체 앞에서 개인이 취하는 소극적 저항과 인간 소외의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며 독자들을 다소 불편하게 만든다. 바틀비는 화자인 변호사의 호의와 연민마저 부정하며 인간관계의 단절 및 결국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자초한다. 자본과 기계 문명의 시스템에서 주인공은 마치 배달이 불가능한 우편물처럼 존재 이유(쓸모)를 상실한 채 소각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2.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 빈자의 푸딩, 부자들의 빵 부스러기
두 편의 단편은 모두 대비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사회 계층 간 격차와 그로 인한 비인간적인 현상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부와 여유를 누리는 남성들의 '천국'과 기계적인 노동에 시달리며 생명력과 개성을 잃어버린 여성들의 '지옥'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가난한 사람이 지닌 소박한 연민과 진실함과 부자들의 화려하지만 위선적인 모습을 나란히 놓으며 19세기 미국의 지배층이 저지르고 있는 도덕적 타락과 계층 간 갈등이 만연한 종교/사회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
3. 빌리 버드
주인공 빌리 버드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군함에 징집되어 앞 돛대 망루에서 보초를 서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는 순수하고 아름다움과 선의로 가득 찬, 마치 태초에 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과도 같이 순진무구하다. 그런 그가 뱀처럼 사악한 부사관인 '클래거트'의 모함을 받아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이를 항변하는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그를 죽이게 되고, 함장이었던 '비어 대위'는 양심에 가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리 버드를 사형에 처한다. 법과 정의의 모호한 판결로 인해 천진난만한 선(善)의 비극적인 희생이 발생하고야 만다. 현실에서는 자주 이성과 양심의 중간에서 애매모호한 딜레마를 초래하고, 이것은 결국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여기에서 소설가 한강이 말했던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질문이 떠오른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고, 문학은 그 설명 불가한 부조리를 다룬다.
4. 나가며
허먼 멜빌의 후기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문명과 야생>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세계 무대에서 후발 신생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미국은, 앞선 유럽의 국가들이 그랬듯 자기들이 문명을 이룩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흑인들을 향한 인종 문제나 노예 제도를 극복하며 차근차근 민주주의 시스템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도 급속도로 성장을 이루며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민족적인 자긍심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허먼 멜빌은 찬란한 문명의 빛 뒤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했고 자기 작품 속에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바로 "문명인들은 무엇을 잊고 지내는가?"였고, 해답으로써 야생적인 삶의 태도를 주장했다고 본다. (번역에서는 종종 야만인이라고 나오지만, 이는 오역에 가깝다)
허먼 멜빌이 말했던 야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죽음을 담담하게 삶의 한가운데 놓고 인정하는 모습'이 아닐까?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에는 더욱 확대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강인해 보이는 기계 문명 속에서 바이러스처럼 도시를 지배하고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생계와 형제·자매를 부양하기 위해 청년 시절 바다의 선원으로 복무했던 그는, 어쩌면 바다가 주는 날 것 그대로의 공포와 그를 이기기 위한 사투를 경험하며 야생이 주는 강인함과 통찰을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비운의 화가였던 고흐처럼 평생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비로소 명성을 얻은 그의 정신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 치열하게 노력했던 선각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