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하는 작가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나 역시 글쓰기를 좋아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책을 내기도 한다. 전업작가가 아니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간편하게 글을 쓰고 하나둘씩 모아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니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간에 발간되었던 수많은 책 중에는 약간의 노력과 재능으로 쓴 책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에 걸쳐 엄청난 축적을 통해 탄생한 것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많이 있겠지만 다 확인할 수 없으니 나의 경험범위 내에서 [로마인 이야기], [파친코], [쓰는 인간]의 세 책에 대해서만 독자로서의 감상이나 소회를 말하고자 한다.
이 세 권의 책 들은 꽤 오래 전에 나온,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그리고 아주 최근에 발간된 책으로 구성이 된다. 이 책들은 모두, 내가 보기에는 축적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나 노력이 방대하고 각고의 과정을 거쳐 출간에 이르게 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물론 그 노력과 축적의 깊이나 방향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점은 공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들에 대해서 말하려면 그 작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인이지만 성년 이후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이탈리아에 관련된 역사서를 써왔다. 이탈리아인과 결혼했고 이탈리아 현지에서 작품 활동을 할 만큼 집필에 천착했다고 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도 많지만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장기간의 세월을 투입하였다.
이 책(시리즈 15권) 집필에만 15년이 걸렸다고 하고(1992년부터 2008년까지 출판) 준비기간까지 포함하면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역사적 해석에 대해서는 학계의 정설이나 기존 사실과 다른 부분으로 인하여 비판적 평론도 많은 편이지만 이 방대한 역사서를 준비하고 집필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축적을 바탕으로 이후 작품들이 연속해서 출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편소설 [파친코]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에 의해 쓰인 소위 자이니치 이야기이다. 2017년 미국에서 최초 출판되었고 2018년 이래 한국의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본이 발간되었다. 뉴욕타임스, 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전미 도서상 후보작에 올랐던 작품이다. 소설 원본도 분량이 많고 애플 TV+의 시리즈물 드라마도 시즌1이 8편, 시즌2가 8편으로 만만한 분량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1989년부터 이런 스토리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였고 30년 가까운 기간의 분투 끝에 소설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인 남편과 4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조사와 취재를 하였다고 하니 작가로서의 열망과 헌신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꼼꼼히 읽어보면 전체적인 흐름이나 구성, 세부적인 묘사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탄탄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2024년 원본, 2025년 번역본이 발간된 [쓰는 인간]을 최근에 읽었다. 롤런드 앨런의 책으로서 뉴요커 올해의 책, 글로브앤드메일 100대 도서에 선정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최근 20여년 사이에 읽었던 책 중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함께 최고의 책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노트나 메모장에 쓰는 행위의 역사와 사례들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작가는 10년에 걸쳐 본인의 아이디어를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조사하고 구상을 다듬은 것으로 되어 있다. 구하기 어려운 원 자료들을 찾아 읽고 분석하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도 좋지만 문체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많지만 탁월한 표현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글이나 책 쓰기의 귀감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원작 'The Notebook'을 '쓰는 인간'으로 번역한 역자의 혜안도 높게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