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취소 80번
국내 상황과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나마 경제와 기업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 한결같을 것이다. 경제를 이끄는 것은 결국 기업이고 기업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오너, CEO와 같은 탑 매니지먼트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이들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이고 한편으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시스템은 오랫동안 재벌중심체제로 운영되어왔다. 그 공과 과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기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우리 재계에서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 삼성 이재용 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광모 회장, 신세계 정용진 회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3세 또는 4세 기업인들이 재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 2세까지만 해도 창업자의 정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측면이 강했으나 3세부터는 카리스마와 치열함 대신에 실용성과 냉정함이 더 우선시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이들이 창업 세대에 이어 한국 경제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다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반면에 승계과정의 문제와 폐해를 지적하거나 이들의 능력이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필자는 최근 3세 기업인들의 행태나 성과가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선 회장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헌신적 사회공헌은 높이 평가할 수 있고 최태원 회장의 혁신지향과 체질개선은 그룹의 성과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삼성그룹,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이 회장의 무노조, 세습경영 탈피 선언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JY 역할론이 확인되기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3세 경영으로 전환되면서 과거 오너경영체제의 강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승계과정에서 보유지분이 다소 낮아졌고 그룹전체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도도 일부 약화되고 있다. 이들 이후 세대에 있어서 4세 경영이 이어질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향후 오너경영의 강도가 점차 낮아지고 삼성과 같이 4세 경영이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라면 한국 대기업과 기업그룹에는 오너경영체제를 대체하여 전문경영체제가 도래할 것인가?
여러 가지 부속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오너경영보다 전문경영이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전문경영자의 대리인 비용 역시 중대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이전보다 미약한 형태로 오너체제가 유지될 가능성, 오너나 가문이 대주주로 남고 전문경영자의 권한이 대폭 확대될 가능성 등 몇 가지가 있겠으나 의외의 변수도 대두될 수 있어서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상당기간에 걸쳐, 현재의 3세 기업인들이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3세 경영의 체제가 높은 성과를 거두는 것만이 한국형 기업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길이다. 또한 오너기업가든 전문경영자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위탁받은 경영책임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지속가능경영의 토대를 구축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