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취소 87번
상법 2차 개정,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 기업관련 법제가 메가톤급으로 강화되고 있다. 특히 상법의 경우 센 상법에서 더 센 상법으로 다시 더 더 센 상법으로 점차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찬반 양론이 치열해지고 기업법제의 당사자인 재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강화된 기업법제로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제고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문제였던 지배주주 즉 오너의 불법이나 전횡이 방지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물론 상법 등 관련제도의 강화는 한국형 기업경영에 큰 임팩트를 미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오너경영의 폐해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랜 기간 정부싱크탱크와 대학에서 기업제도, 지배구조 등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그에 더해 수년간 어느 기업의 경영상황을 아주 가까이에서 면밀하고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간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단컨데, 이사회 구성이 바뀌고 오너에 대한 압박수단이 강화됨으로써 불법의 소지가 약간 줄어들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폐해가 완화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 이유를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너와 경영진은 통상적인 거래 이외에도 여러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거래 상대방과 이면계약을 맺음으로써 쉽게 불법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기업의 밖에서 내부의 이면계약 여부를 감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 중에서 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지 않는 것들이 매우 많다. 이사회나 사외이사는 주로 회사의 자금이나 투자에 관련된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이들 이외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오너는 그 자신이 불법과 전횡의 행위를 직접 수행하지 않고 믿을만한 임원이나 담당하는 직원을 통해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기업의 인사에 관한 문제는 오너의 전권에 해당한다. 인사 문제에 이사회나 소액주주가 관여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넷째, 더 센 상법이 발효가 되면 회사 및 오너는 바로 이사회의 이사 수를 줄일 것이다. 물론 이사 수를 줄여도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이사가 과반 이상이 되겠지만 그 숫자가 미미할 경우 영향력은 부분적으로 제한될 개연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강화된 기업 법제로도 오너경영의 페해를 줄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반면에 강화된 제도에 따르는 부작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배주주는 나쁘고 소액주주는 선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가 여차하면 경영자의 책임을 묻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가능성이나 인센티브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이를 방어하고 대응하느라고 상당한 노력을 경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주식회사, 상장회사는 대체로 오너경영체제를 근간으로 한다. 오너경영체제에는 강점과 폐해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감시수단이 많은 대기업에 비해 제도의 틀 안에 있는 감시수단이 마땅치 않은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에서 오너경영의 폐해가 더극심한 경우도 충분히 상정해볼 수 있다. 결국 투명성과 지배구조 관련법제의 개선은 매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접근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