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취소 91번
나는 어느 회사의 회식자리에 자주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긴 회식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은 예외없이 잠을 못자고 끙끙 앓았다. 회식 시간 동안 너무나도 참담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던 탓이다. 모든 대화가 정점의 한 사람을 칭송하는 데 맞춰지고 아부와 충성의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내가 오래 지내온 조직의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어찌보면 막장에 해당하는 체질이 고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조직, 이런 회사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CEO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안건에 대해 결이 다른 발언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독선적이고 맹목적인 북한식 조직운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간부급들의 실력도 깡통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요안건에 대한 담당임원의 견해는 자문받는 외부기관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전하는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회의에서 각자 의견을 말하라면 아무 얘기도 안한다. 그러다 CEO가 자기 의견을 말하면 그때야 봇물 터지듯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발언이 줄을 잇는다.
개인숭배 발언도 빠지지 않는다. 얼굴 화끈거리는 애기도 버젓이 한다. 내가 안하면 남이 하기 때문이리라. 이를 듣는 사람은 너무도 행복해한다. 거기다 자기 얘기를 보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런 회식자리가 끝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한다. 다음 회식자리를 기대하며...
그런데 이런 회사가 어디 여기 한곳 뿐이겠는가? 많지는 아닐 것 같고 일부일 텐데 적은 수는 아닐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런 회사, 이런 조직에서는 늘 음습한 구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위 불법에 해당하는 결정이나 실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증거나 확인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더이상 말하지는 않는다. 언제 기회가 되면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수십년 기업연구를 해온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은 매우 특이하고 강렬해서 오래 기억할것 같다. 또한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하루빨리 정상적인 조직운영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 자신들과 많은 직원 및 주주를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