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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안 두드리는 회사

by yykim

내가 잘 아는 또 하나의 회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상당히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고 중소기업으로서 성과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도무지 사업확장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속사정을 좀 아는 다른 회사들은 대개 사업을 더 벌이려고 애를 쓰거나 미래의 성장동력, 유망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또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회사는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고 그 탓인지 경영성과는 항상 그 자리, 주가는 좀 민망한 수준에 늘 머무르고 있다.

회사의 '성장'에서 말하는 성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냥 쓰고 있는 '사업'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욕구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고 사업의 확장을 통한 성장지향은 기업가, 경영자의 DNA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업확장에 너무 의욕적인 것도 좋지 않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도 내부 구성원과 외부 주주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돌다리의 비유를 통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돌로 된 다리라고 하더라도 건너기 전에 두드려보고 안전한지 확인한 연후 건너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유되는 대안이다. 그런데 돌로 된 다리이니 무조건 건너고 보자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안전할 것 같지만 건너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회에서 소개한 회장님의 고민은 이 유형에 해당한다.

본회에서 말하는 회사는 아예 돌다리 자체를 두드릴 생각조차 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래서는 사업의 성장, 회사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리스크를 부담하거나 회사가 망할 일은 없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안 망해도 주변에서 다른 기업들이 쑥쑥 커서 이 회사를 위협하거나 이 회사의 성장기회를 잠식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에서 보듯이 기존사업 고수, 인접사업 확장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다. 단순히 경영자의 철학이나 전략선택에 맡겨둘 사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A기업, B기업 등은 과거에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런데 수십 년 기존사업만을 고수함으로써 상대적인 지위가 많이 약화되었다. 오래 전에 10대 기업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 이제는 500대 기업의 순위 안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확장 시도로 좌초한 기업의 사례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민화의 메디슨은 벤처 1세대로서 한때 수퍼스타와 같은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과도한 M&A로 연방제처럼 운영하다가 실패한 케이스라고 알려져 있다. 오너나 CEO의 확고한 경영철학에 의해 사업의 범위가 결정된다고 해도 다각화가 지나쳐서 망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너무 안전 위주의 사업운영으로 성장하지 않는 회사가 있다면 직원과 주주는 괜찮을 것인가? 오너는 회사가 성장 안 해도 내 재산 지키면 그만이지만 직원이나 주주는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지 못한다면 voice 또는 exit의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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