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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Mar 19. 2022

성 밖의 성녀 아녜스 대성당

순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성녀 아녜스의 생애와 이름의 유래

성녀 아녜스의 머리

많은 순교 성녀들이 있지만 이탈리아에는 혹독한 로마 박해 시절에 순교한 4대 성녀가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시칠리아의 아가타루치아 그리고 로마의 세실리아아녜스입니다. 그중에 성녀 아녜스는 12살 가장 어린 나이에 순교한 분입니다. 아녜스는 미모가 빼어났고 그 모습에 반한 한 로마 귀족 청년이 청혼을 하지만 거절을 당합니다. 화가 난 청년은 복수심에 불타 아녜스를 로마의 신에게 향도 올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발을 하였고, 박해를 심하게 했었던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옆에 있는 매음굴로 옷이 벗겨진 채 던져지게 됩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온몸을 덮을 정도로 자라나 자신의 몸을 가리게 되었고 아녜스를 범하려 들던 한 남자가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근처에 있던 어떤 남자도 아녜스의 순결함을 더럽힐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불속에 던지라고 황제는 명령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속에서 평온이 기도를 하였고 불은 순식간에 꺼져버리게 됩니다. 화가 난 황제는 목을 치라고 명령을 하였고 그녀는 어린 양의 목을 찔러 죽이는 것처럼 304년에 순교를 하게 됩니다.


나보나 광장에 있는 아고네의 성 아녜스 성당

그녀의 유해는 로마 성 바깥 노멘타나 가도 위에 이미 그리스도교인들이 많이 묻혀있던 카타콤베 내부 가족 무덤에 안장을 하였고, 그 위에 교황들은 그녀를 기념하는 경당을 세우게 됩니다. 그녀가 순교한 곳인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은 지금의 나보나 광장이고 그 자리 위에는 17세기 카를로 라이날디와 카를로 보로미니가 건축한 바로크 양식의 아고네의 성 아녜스 성당 (Chiesa di Sant'Agnese in Agone)이 봉헌되었습니다. 성당 안에는 성녀의 머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성녀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순결함의 뜻을 가지는 아그노스 (αγνοs)에서 유래하고 라틴말의 아뉴스 (agnus, 어린양)와 비슷하여 성녀의 그림에는 항상 어린양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성녀가 하늘나라에 태어난 날인 1월 21일에는 아녜스 성녀의 유해가 모셔진 제대 위에서 처녀를 상징하는 흰색 화관을 쓴 어린 양과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화관을 쓴 어린양 두 마리를 축복하고 이 양에게서 나온 털로 교황님과 추기경들이 사용하는 팔리오 (Palio)라는 영대를 전통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 밖의 성녀 아녜스 대성당

Basilica di Sant'Agnese fuori le mura


현재 코스탄자의 바실리카
바실리카의 주변 평면도

성녀 아녜스를 위해 만들어진 첫 번째 건물인 바실리카 콘스탄티나로 불렸던 건물은 342년 헬레나 성녀의 아들이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 코스탄자 (Costanza)에 의해서 황제 가문의 땅 위 성녀 아녜스의 무덤 근처에 건설됐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나병에 걸렸던 코스탄자는 아녜스의 무덤에서 기도를 하였고, 기적적으로 병에서 치유가 되면서 아녜스에게 큰 공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녜스의 무덤 위에 만들어지지 않은 이 바실리카는 4세기 로마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무덤 위에 만들어진 바실리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와 성 밖의 성 로렌조 무덤 위에 세워졌던 바실리카의 모습과 유사한 대전차 경기장과 같은 제대 쪽이 반타원형의 벽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세로 98미터 가로 40미터의 크기를 가지고 있던 이 바실리카는 공동묘지 위를 덮고 있으면서 장례식을 하거나 아마도 성녀의 축일뿐만 아니라 순교자를 위한 미사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이 바실리카에 붙여 만들려고 했던 코스탄자 자신의 무덤을 미리 준비한 건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에는 육신의 부활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부활할 성인 성녀의 옆에 묻혀있으면 그 부활의 날에 함께 부활의 나팔 소리를 듣고 더욱 쉽게 자신도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코스탄자도 갖고 있었습니다.


7세기 오노리오 1세 교황이 성녀 아녜스를 위한 새로운 성당을 성녀의 무덤 위에 봉헌하면서 콘스탄자의 바실리카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아마도 이 새로운 성당을 짓기 위한 재료를 코스탄자의 바실리카에서 가져오면서 점차 부서져 가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성녀 코스탄자 성당 정면과 내부
성녀 코스탄자 성당의 돔과 회랑 천장에 있는 4세기 모자이크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는 장면 모자이크

코스탄자의 바실리카 왼편에는 마우솔레오 디 코스탄자 (Mausoleo di Costanza)라는 로마 후기 양식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이었던 코스탄자가 본인이 살아있을 당시에 만들기 시작하여 죽고 난 후인 361년경에 완성한 영묘입니다. 무덤에는 코스탄자 자신과 코스탄티노 황제의 다른 딸이었던 엘레나도 묻혀 있었습니다. 코스탄자의 석관은 현재 바티칸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아녜스 성당이 만들어진 7세기에는 세례당으로 사용하였고, 1254년부터는 교황 알렉산드로 4세의 뜻에 따라 에클레시아 상타 코스탄티에 (Aecclesia Sanctae Costantiae)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성당이 되었습니다.


지름 22.5미터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원형 건물로 만들어진 것은 당시 판테온이나 아우구스토 황제의 영묘와 같은 로마 건축을 따른 것도 있지만,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성당을 따르고 싶은 맘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장을 덮고 있는 돔 형태의 지붕 둘레의 열두 개의 창은 열두 교회, 열두 사도를 상징하고 있고, 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천상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사다리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또한 12라는 숫자는 두 개가 한 쌍을 이루고 성당을 떠받치고 있는 열두 개의 기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둥근 회랑 천장에는 아직도 4세기 때 만들어진 기하학적이며 자연을 표현하는 공작새, 비둘기, 가지로 얽혀있는 과일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성변화하게 되는 포도주의 수확 등을 표현한 모자이크 일부분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벽감의 반타원 천장에는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 중 첫 번째라는 것을 상징하듯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의 열쇠를 주는 모자이크도 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세 개의 출입구

성녀의 무덤 자리 위에는 이미 성녀가 순교하고 묻혔던 4세기 때부터 로마시대의 가족 무덤과 유사한 소성당 (ad corpus)을 교황 리베리오 (Liberio, 352-366)와 교황 다마소 (Damaso, 366-384)에 의해 만들어졌고, 교황 오노리오 1세 (Onorio I, 625-638)에 의해서 지금의 성당이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노리오 교황에게 새로운 성당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성녀의 유해를 훼손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하 1층 카타콤베에 있었던 성녀의 무덤 위에 제대를 놓기 위해 성당의 절반이 땅속에 들어간 형태로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성당 정면을 보면 벽돌로 된 윗부분과 벽돌이 아닌 아랫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거의 천 년 동안 아랫부분은 땅속에 있었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지금 볼 수 있는 성당 정면에 입구는 1600년대 메디치 가문의 알렉산드로 오따비아노 추기경이 만들었습니다. 그전에 이 정면에서 성당을 출입하기 위한 문은 윗부분 창문 사이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당을 주로 드나들 수 있었던 출입구는 반대쪽 종탑 옆으로 나있는 문입니다. 이 문을 통해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2층에 여성과 아이들이 머무는 마트로네이 (Matronei)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지상과 연결된 문이 있었고 계단을 통해서 성녀의 무덤이 있는 바닥까지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또 다른 출입구는 성당 오른쪽 위에서 지하 1층 성녀의 무덤이 있는 카타콤베로 직접 내려가도록 만든 통로입니다. 종탑은 후에 줄리오 2세 교황이 되는 로베레 가문의 줄리아노 추기경이 1479년에 만든 것입니다.


이 세 개 중 카타콤베로 내려가는 통로가 가장 오래된 것이고 양옆 벽에는 아녜스 카타콤베에서 나온 석관의 파편이나 조각의 일부분 그리고 많은 비문 등이 붙어있습니다. 이 중에는 특히 아녜스 성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부조 (4세기)가 들어가 있는 석판이 있습니다. 이 석판은 리베리우스 교황 시절에 성녀의 무덤 주변 장식으로 붙였던 판이었고, 여기에 등장한 성녀 아녜스는 긴 장백의를 입고 양손을 벌려 기도하는 12살 소녀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모습을 오란테 (orante)라고 부르고 있고, 우리를 위해서 천상에서 기도하고 우리의 기도를 전구해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아녜스의 무덤 비문도 볼 수 있습니다.


아녜스 성당 내부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다른 바실리카 성당에서 보지 못했던 두 개의 기둥으로 나누어 올린 2층 구조로 된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로마에서 박해가 끝나면서 카타콤베에 있었던 성인들의 무덤 위에 성전을 세울 때 교회에서 우려했던 것은 성인의 유해가 훼손되거나 분실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의 유해를 옮기거나 무덤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성인의 유해가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공간을 확보하여 성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이런 성당의 예로 볼 수 있는 곳이 성 밖의 로렌조 성당이나 도미틸라 카타콤베에 흔적이 남아있는 성 네레우스와 아킬레우스의 성당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공간이 있는 성당을 만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녜스를 공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가능하면 성녀의 유해가 있는 곳 가까이 가서 기도나 미사를 드리길 원했지만, 좁은 통로를 가지고 있는 지하 카타콤베는 들어가는 것부터 위험하기도 했고 공간도 부족하였습니다.


2층에서 보는 성당 내부

아녜스 성당의 아래층 기둥들은 코스탄자의 바실리카에서 가져와 사용했을 것이며 위층의 기둥들도 7세기 때의 것들입니다. 기둥 사이 프레스코화는 19세기 때 그려진 것이며 아래층에는 아녜스 성당의 개축이나 보존과 관련해 도움을 준 교황들의 초상화가 있고 위층 창문 사이에는 여자 순교자들의 전신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성당 천장

나무를 깎아 조각을 하고 그 위에 도금한 천장은 직접적으로 보이는 지붕을 가리기 위해 1606년 바오로 에밀리오 스폰드라티 (Paolo Emilio Sfondrati) 추기경이 봉헌하여 만들었고, 성녀 아녜스를 중심으로 위에는 성녀 코스탄자 그리고 아래는 성녀 세실리아의 부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17세기에 오른쪽 벽 쪽으로 세 개의 소성당이 만들어졌고 중앙 제대 오른편에서부터 아녜스와 친자매는 아니지만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하는 성녀 에메렌지아나 (Emerenziana) 소성당, 성 스테파노와 로렌조 소성당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 소성당이 차례로 있습니다. 왼편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또 다른 세 개의 소성당이 있습니다.


중앙 제대와 치보리움
성녀 아녜스와 성녀 에메렌지아나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함과 제대 뒤 성녀 아녜스 석상

중앙 제대와 제대를 덮고 있는 치보리움(1)은 1620년 교황 바오로 5세가 봉헌하였습니다. 제대는 상감기법으로 만들어 다양한 색의 돌과 대리석이 조각처럼 들어가 있고 치보리움의 네 개의 기둥은 값비싼 적색 반암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중앙 제대 아래에는 역시 바오로 5세 교황에 의해 성녀 아녜스와 친자매와 같은 성녀 에메렌지아나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는 유골함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장소는 원래 카타콤베를 들어가야만 볼 수 있었지만, 1950년에 제대 오른편 뒤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지금은 방문하는 사람 누구나 성녀의 유해가 모셔진 곳 가까이에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제대 뒤에는 1604년경에 만들어진 아녜스의 석상이 있고, 이것은 고대 로마 시절 알라바스트로 대리석으로 만든 어느 로마 여인의 몸체에 얼굴과 손 그리고 발을 덧붙이고 도금한 청동으로 옷을 입혀 만든 것입니다.


압시대에 있는 7세기 모자이크

제대 후진의 반타원형 압시대에는 이 성당 건축시기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아주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하늘에는 하느님의 손이 보이고 있고, 그 손으로부터는 신비로운 빛과 은총이 성녀 아녜스의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모자이크의 배경이 되는 황금색은 이곳이 천국임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운데 성녀 아녜스는 비잔틴 제국의 황후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고, 이 옷의 오른쪽 아래에 불사조 피닉스를 그려넣음으로써 성녀의 영원한 삶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원한 삶은 지상에서 예수님을 증거 한 삶의 대가(代價)입니다. 아녜스의 발아래 갈라져 있는 불의 모양은 성녀를 태울 수 없는 기적을 보여주고 칼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순교하였는지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왼편 교황 오노리오 1세는 자신이 봉헌한 성당 모델을 손에 들고 있고 오른편은 아마도 교황 심마코일 것이고 귀한 보석으로 감싼 복음서를 들고 있습니다.


오노리오 교황이 1400년 전에 이렇게 큰 성당을 봉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아녜스 성녀에 대한 공경심이겠지만 로마 시민들이나 로마를 찾는 순례자들이 아녜스가 신앙심을 통해 증거 한 하느님의 현존을 더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호교론 (護敎論)을 바탕으로 한 선교를 목적으로 이 시기에 전해진 성녀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과장된 면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웅 같은 이야기도 이교도인들이나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알리려는 노력이었을 것이고, 힘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지상의 여정을 견딜 수 있는 커다란 위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녀 아녜스처럼 성인이 된다는 것이 나와는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하느님에게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오 5장 48절



여러분!!

축하 인사말을 전할 때, 인사로 "부자 되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성인 되세요"라고 축복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 도면 *

이해 도움 자료 : 아녜스 성당 평면도와 아녜스 카타콤베 지도 (출처 : roma-roma.net)




(1) 치보리움 (Ciborium) :

음식을 넣어두는 장소나 함을 뜻하고 있다. 중세 때까지 건축적으로 네 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 제대를 덮는 집처럼 만들었고 이 안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는 성합이나 성체를 직접적으로 보관을 하였다. 르네상스 시절부터는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것처럼 발다키노 (Baldacchino)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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