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만 아는 첩보작전

by 산토니

창 밖으로 조그만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간다. 이름은 모르겠다. 몸은 어두운 색, 참새보단 크다. 스무 마리 정도가 건물 10층 높이에서 날개를 바삐 움직이며 편대비행을 한다. 고개를 돌려 새들의 움직임을 좇지만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저 새들은 친인척 관계일까?


문득 든 생각. 새가 한 번에 알을 스무 개씩 낳는다는 얘긴 들은 적이 없으니 형제자매는 아닐 테고. 친인척이 아니라면 어떤 연유로 저처럼 일사불란한 편대를 이루게 된 걸까.


어릴 적 골목 어귀에서 놀이를 함께 할 친구를 구하듯 가까운 동네 사는 새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걸까? 아니면 새들을 무리로 엮어주는 반장 아저씨가 있어서 너는 A, 너는 B 그룹으로 가거라 정해준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분명 마음이 맞지 않는데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B 무리랑 어울리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군대든 학교든 직장이든 내가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속하게 되는 곳에는 마음 맞지 않는 이가 한둘쯤 반드시 있는 법이다. 새들도 스무 마리쯤 모였으면 그런 역학관계는 생길 수밖에 없다. 나만 계속 앞자리에 세우는 고약한 대장새라든지 벌레를 발견하면 혼자 날름 삼켜버리는 얄미운 녀석처럼 말이다.


그런 녀석들 때문에 내 자리를 지키는 일이 고역이 되면 새들은 어찌할까? 앞서 무리를 정해줬던 반장 새에게 찾아가 이러저러한 부당한 처우를 받았으므로 무리를 옮겨달라고 할 것인가?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섣불리 무리를 옮기는 건 부담이 크다.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어찌어찌 옮긴다 하더라도 그곳 역시 새들이 스무 마리쯤 있는 비슷한 사회일 테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녀석들 한둘쯤은 반드시 껴있을 수밖에.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새라면 이 정도 생각은 해야 한다. 그러니 다른 무리에 있는 친구라든지 중간에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누군가를 통해 미리 파악을 해야 한다.


또한 인력의 이동에는 상호합의가 필요한 법이다. 내가 가고 싶다 해도 거기서 받아주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내 의도를 숨기고 지금의 위치에서 부당함과 고역을 이겨내는 에이스로 비쳐야 한다. 조직을 떠나려면 조직에서 가장 뛰어난 자원이 되어라. 탈출은 지능순이다. 새들의 세계에도 이 법칙은 통하는 법이다.


새들은 높은 데서 멀리 보고 주변 정보를 적극 습득하는 동물이니 무리 B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는 녀석의 소식은 쉽게 다른 무리에도 전해질 것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이는 녀석은 눈에 띈다.


여기서부터는 첩보가 벌어진다. 스카웃하려는 무리는 타겟인 X에게 은밀히 접근해야 한다. 하늘엔 금을 그어놓은 것이 아니니 두 무리는 언제든 마주칠 수 있다. 섣불리 다른 무리의 에이스를 데려가려다가는 큰 싸움이 날 수 있다. X 역시 귀가 솔깃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나서서 무리를 떠나겠다는 얘기를 꺼내긴 어렵다. 이 바닥(하늘인가)은 좁고 언제 어디서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소통은 은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모든 새가 활동을 멈추고 나무덤불 아래 그늘에 네 무리 내 무리 할 것 없이 모이는 때, 그때가 기회다. 여름 방학 공원 농구코트에 서로 다른 학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시간을 때우듯 새들도 그때만큼은 다른 무리와 어울리는 게 어색하지 않다. X와 무리 A의 스카웃 담당자는 스치듯 지나는 그 찰나에 서로의 의사를 교환한다. 조그만 새들의 이유 없이 재빠르고 분주한 날갯짓, 몸놀림, 그리고 고개의 움직임. 눈치 빠른 두 새는 남들 몰래 얘기를 마친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이제는 실제로 자리를 옮길 차례다. 새들의 세계에 노동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소속을 옮기는 일은 피를 볼 각오를 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간사회 역시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소속을 옮기려다 비명횡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둠의 세계에선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일일지 모른다. 법의 테두리가 있는 세상에서도 그러한데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이라면 더더욱.


소속을 옮긴 새는 아마 변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새들이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같은 종 안에서라면 길이가 5센티쯤 차이가 난다거나 점의 위치가 조금 비뚤다거나. 고작 그 정도뿐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눈에 그런 것이지만 눈 감고 넘어가자.


그 덕에 변장은 그리 품이 들지 않는다. 새로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털 몇 가닥을 뽑고, 없던 점을 타투하듯 살짝 그려 넣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원래의 무리에서는 한동안 사라진 X를 수소문할지도 모른다. 옮겨간 무리에선 솔직히 말할 리가 없고 관계없는 무리는 매일 함께하던 녀석들도 못 찾는 X를 알아볼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두 무리가 함께 나무 그늘에 모이는 날에 옛 동료가 X를 알아채고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다. 이미 변장은 마쳤다.


X의 입장에서 더욱 다행인 점은 새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이전 무리의 새들은 X의 존재를 잊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X도 변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원래의 모습으로 비행을 나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때쯤 되면 X가 무리를 옮기기 위해 이토록 번거로운 첩보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새는 하나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X가 새로운 무리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새를 만나 가슴앓이를 하고 또 다른, 이상적인 무리로의 전출을 꿈꾸며 가짜 에이스 역할을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