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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내린 크리스마스

3월에도 크리스마스는 올 수 있다.

by 산뜻

정말 오랜만에 밤에 술을 마셨다. 그것도 정말 마시고 싶었던 막걸리. 오미자 생막걸리라는데 일반 막걸리보다 새콤했다. 검색해 보니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과실이 들어간 막걸리라고 한다. 이 막걸리를 마신 곳은 내가 지나다니면서 가보고 싶었던 가게 ‘몽글담주’였다. 어느 날 지나가면서 봤는데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왠지 맛있는 막걸리 안주를 판매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음식을 먹을 때 음료를 페어링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도 술기운을 즐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음식을 더 맛있게 하기 때문에 즐긴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 마실 때면 소주보다는 맥주, 막걸리, 와인처럼 향이 있는 발효주를 선호한다. 은근히 천천히 향을 피워내는 발효주.


이날 분위기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소고기 육전과 곁들여 나온 파무침, 백합술찜을 오미자 생막걸리와 마셨다. 마침 하늘에는 진눈깨비가 점점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왠지 크리스마스 같았다. 앞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친구가 눈을 보면서 “오늘 몇 월이냐?”라고 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듯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3월이야아!”라고 답했다. 눈 내리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에 가득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내 글을 보여주고 싶었다. 술집에 오기 전 잠깐 타로를 봤는데, 나에게 취미로만 글을 쓰라며 직업으로 삼아 돈을 벌려면 결과가 오래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였다. 나는 블로그에 올린 ‘순간을 소중히’라는 글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네가 글을 잘 쓰긴 한다, 조금 더 연결이 매끄러웠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나중에 다 추억이 된다는 말에 함께 공감했다. 나도 여러 감정의 폭풍을 지나면서 이번 연도부터 그것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함박눈을 안주 삼아 대화는 점점 무르익었고 2차에서는 얘기를 나누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천천히 발효되는 막걸리처럼, 진눈깨비가 어느새 함박눈이 되는 것처럼, 점점 무르익는 대화처럼 그렇게 인생을 살고 싶다. 글로 직업을 삼는 것은 별로라는 평을 받았다만, 내가 쓰고 싶은 걸 어쩌나. 그냥 쓰고 마는 거지. 내 글도 천천히 무르익으며 발효되어 갈 테다.

3월에도 크리스마스는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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