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왜 안하냐고 물으신다면
얼마전에 처음으로 알게 된 내 사주에는 흙이 많다고 한다. 사주팔자에 흙이 절반이다. 나를 나타내는 한자는 ‘무토’, 큰 산처럼 흙이 무성하게 쌓인 모양을 뜻한다. 흙이 잔뜩 있어 무겁고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고집이 어마어마하게 센 사주라고. 좋은 말은 없나하고 찾아봐도 다른 건 보이지도 않고, 고집이 세다는 말만 눈에 박혔다.
아니 이건 불공평하지. 내 의지로 나온 것도 아닌데 낳아진 시간에 성격까지 정해져 있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지. 한참을 성을 내다가 이렇게 성을 내고 있는 것조차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아 진정했다. 근데 고집의 뜻이 뭐지.
‘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뭐야. 생각보다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잖아. ‘아집’이나 ‘쇠고집’은 자신의 논리가 틀렸음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부정적이지만, 고집이라는 단어는 중립적으로 쓰인다는 부연 설명.
생각해 보니 스스로 맞다고 생각한 의견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한테 맞는 게 맞으니까! 그래도 ‘쇠고집'이랑은 살짝 선을 긋고 싶다. 난 논리가 틀렸음을 알면서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게 아니라 진짜 틀렸다는 걸 모르거나, 설득되지 않아서니까. 논리에 설득력이 없으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차라리 쇠고집 말고 ‘똥고집’이라고 불리는 건 완전 인정이다.
똥고집으로 세상을 살아보니 매사가 쉽지 않다. 고집쟁이라고 다 제멋대로 사는 게 아니다. 고집이 세다고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가. 그렇게 여기저기 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한쪽으로. 설득되지 않는 건 조금도 인정하기 싫은 똥고집이 다른 한쪽으로. 그렇게 양쪽으로 잔뜩 당겨진 마음은 팽팽하다. 그래서 나 같은 고집쟁이는 오히려 끙끙거리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온갖 기준이 있고, 설득되지 않는 기준에는 조금도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어떤 기준도 완벽할 순 없고, 그렇다면 남이 아닌 내 기준대로 살고 싶었다. 일도, 결혼도, 생활방식까지도. 그 와중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멋모르고 자꾸 나를 또 당겼다. 남들 좋다는 것도 일단 따라 해 봐. 다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게 양쪽으로 버티다 튕겨버린 마음에는 주름만 가득하다. 아. 명성은 요원하고, 부모님한테 등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인 하루하루.
세상의 기준이고 나의 기준이고 다 내려놓고 나니 여기다. 결혼은 아직. 나이는 가득. 남들 눈에 좋은 직장도, 내 기준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던 직장도 결론적으로는 별로였다. 돌아보면 내 기준도 나에게 완벽하지 않았다. 이쯤되면 이 기준도 저 기준도 다 똑같아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한데 나만 맞을리도 없고, 세상이 다 틀렸을 리도 없었다. 양쪽에서 당긴다고 버티기만 했는데, 차라리 양쪽으로 유연하게 쭉 뻗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