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 Sep 27. 2023

정성은 날 옹졸하게 해

결혼, 왜 안하냐고 물으신다면

 4월의 어느 날. 남자친구의 어머니께 인사드릴 날을 이 주 앞두고,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여차저차 그날 인사를 드리기는 무리라는 이야기였다. 상황은 이렇다. 남자친구가 결혼을 전한 날. 처음엔 알겠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내 고집 센 사주부터 얼굴 생김새, 작은 키까지 모든 게 눈에 차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아들이 너무 아깝다며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고.


 나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의 상대였나. 아니면 너무 잘난 남자친구를 둔 탓인가. 음 그거라도 맞다고 생각하자, 껄껄. 아무튼 의도치 않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처음으로 알게 된 내 사주가 고집으로 가득하다는 것도 낯설었지만, 이 상황 자체는 더 낯설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 타고난 키랑 사주는 바꿀 수 없고, 성형외과라도 알아봐야 하나 하고 농담조로 칭얼거려 본다.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시간을 달라는 남자친구의 어두운 얼굴 뒤로 그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 떠올랐다. 남자친구는 어머니를 만나고 오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없었다. 어느 날은 백화점에서 정성스럽게 사이즈를 맞춰 고른 옷, 또 어떤 날은 세탁해 개켜진 새 속옷들, 그리고 외식 말고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에는 정갈하게 포장된 반찬이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그간 눈치도 없이 반찬 많이 먹었습니다. 불고기는 특히 맛있더라고요) 


 혹시나 새거나 냄새가 날까 단단하게 이중포장되어 재워진 불고기와 키친타월마저도 각이 잡혀 깔린 쇼핑백. 열면서 나도 모르게 ‘우와’하고 머릿속 소리를 입 밖으로 낸 것 같다. 뚜껑을 여니 미슐랭 요리 접시처럼 양념 하나 삐져나오지 않고 불고기가 곤히 자고 있었다. 이건 분명 그냥 남아서 싸주신 게 아니다. 처음 고기를 재울 때부터 가져갈 몫을 따로 덜어 재워둔 것이 분명했다. 아 나는 따라갈 수 없는 정성.


 뭐든 조금 빠르고 간편하게 해치우려는 성향을 가진 나는 아마 절대로 그렇게 포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애초에 불고기를 직접 만들어 양념에 재우지도 않았을 테니 처음부터 글러 먹었다. 평소에 어머니께 그다지 살가워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를 힐끗 본다. 나도 이 사람 사랑하는데. 같은 마음인데 이렇게 다르다.


 다정하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불고기를 포장하는 마음을 상상해 본다. 언제 연락이 올지도 모르지만 매번 쇼핑을 가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계절에 맞는 옷을 고르는 그런 사람을 떠올려 본다. 항상 가장 최선만을 바라는 마음이 절절하고 애틋하다. 근데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나에게 불편할 수 있다니. 나름대로 이해심이 깊다고 자부하던 나인데 조금 당황스럽다. 진짜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너무 큰 사랑. 옹졸해지는 나.


작가의 이전글 똥고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