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33: 호기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호기


초식남(草食男)이 등장한 정도로 남성의 모습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그렇다고 예전에 활개 쳤던 마초 같은 남자가 꼭 좋다는 말도 아니다. 가부장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자는 이제 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남자다운 남자는 무엇일까? 가슴 속에 당당한 포부나 배짱을 갖고 있어야 하고, 삶에 대한 태도는 남들 눈에 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호기는 허세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허세는 없는 것을 있는 듯 꾸며내지만, 호기는 갖고 있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다.




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 먹여 다 없앴네.

사나이 스물에 나라 평정 못한다면

훗날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流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남이(南怡),「정남(征南)」


이 시는 여진족을 토벌하고 쓴 것이다. 남이 장군은 너무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했다. 백두산과 두만강을 누비면서 뜻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에 내비치는 과도한 자신감이 치기(稚氣)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호기는 위험할 수도 있다. 야사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유자광이 그의 역모를 고변할 때 이 한시의 3행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의 평평할 평(平)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 모함했다고 한다. 이 시를 보고서 이수광은『지봉유설』에 “그 말뜻이 발호(跋扈)하여 평온한 기상이 없으니 화를 면하기가 어려웠다.”라고 평했다. ‘발호’란 큰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니 아랫사람이 권력을 휘둘러 윗사람을 벌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래저래 이 시가 남들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등림영회도(登臨詠懷圖).jpg 등림영회도(登臨詠懷圖) ,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에 실린 남이장군의 모습




손가락 튕겨 보니 곤륜산 박살나고

숨 한 번 내쉬어 보니 땅덩어리 산산조각

우주를 가두어서 붓끝에 옮겨보고

큰 바다 기울여서 벼루에 쏟아 붓네

彈指兮崑崙粉碎 噓氣兮大塊紛披

牢籠宇宙輸毫端 傾寫瀛海入硯池

–장유(張維, 1587∼1638),「큰소리[大言]」


손가락 한 번 튕기니까 곤륜산이 단박에 박살이 나고, 숨을 한 번 내쉬니까 커다란 땅덩이가 산산조각난다. 붓끝으로 우주를 써 내려가고 벼루에다 큰 바닷물을 쏟아놓는다. 스케일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자잘한 일과 관계에 못 견디어 한숨 쉴 필요 없다.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다 사소한 일들이다. 작은 일에 부르르 떨고 사람들을 못 견뎌 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몇 자 안 되는 어린 대나무지만

구름도 넘어설 뜻 이미 지녔다.

몸이 날아올라서 용이 되리라

평지에 결코 눕지 않을 것이다.

嫩竹纔數尺 已含凌雲意

騰身欲化龍 不肯臥平地

–홍세태(洪世泰, 1653∼1725), 「어린 대나무[嫩竹]」


이 시는 홍세태가 45세 때 지은 작품이다. 꿈은 더디고 더디게 현실로 모습을 바꾸거나 끝내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자질은 충분하나 성취는 부족한 사람을 두고 위로하는 말들은 많다. 미완(未完)의 대기, 대기만성(大器晩成), 유망주(有望株) 등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끝내 성취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담겨져 있다.

아직은 어린 대나무이다. 다 자라기 전에 꺾일 수도 있지만 저 창공까지 높이 자라고 싶다. 이렇게 평지에 누워 있어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삶을 마치지는 않겠다. 용처럼 멋지게 하늘을 날아오르리라. 그는 끝내 용이 되었을까?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서 2000수 넘는 시를 지었다. 게다가『해동유주(海東遺珠)』를 찬집해 중인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일본과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시인이 되었다.




천 석들이 저 종을 쳐다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도 안 난다네.

만고에 변함없는 천왕봉을 보세나

하늘이 울어대도 우는 일 전혀 없네.

請看千石鍾 非大叩無聲

萬古天王峯 天鳴猶不鳴

조식(曺植),「덕산 계정의 기둥에 쓰다[題德山溪亭柱]」


이 시는「천왕봉(天王峯)」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식의 문집인『남명집』에는 제목이「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로 되어 있다. 조식이 지리산 정상을 보고서 감회를 쓴 것이다. 산의 정상에 서면 여러가지 감회가 돋는다. 이이(李珥)는「비로봉에 올라서[登毘盧峯]」에서 “지팡이 끌고 산꼭대기 오르노라니, 세찬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누나.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파란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구나.[曳杖陟崔嵬 長風四面來 靑天頭上帽 碧海掌中杯]”라 하였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이다. 그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처사의 삶을 자처했지만 누구보다 학식과 명망이 높았다. 평소 방울을 달고 칼을 차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삶을 실천했다.

청량산이 퇴계를 대표한다면 지리산은 남명을 대표한다. 커다란 종을 보면 어지간한 큰 것으로 종을 때려도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저 우뚝 솟은 지리산 천왕봉을 보아라. 하늘에서 비바람불고 천둥 번개가 쳐도 아무런 일 없다는 듯 그렇게 오래 세월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커다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그런 사람이 되려한다.


지리산 천왕봉.jpg




호기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호기롭다고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세상을 얕보게 된다면 호기가 없느니만 못하다. 나이가 들면 눈에 띄는 육신이 쇠락 뿐 아니라 의지도 시들어간다. 그래서 꿈은 갈수록 작아진다. 스스로는 갈수록 왜소해지고 세상에 길들여진다. 당당한 호기는 세상에서 무엇도 자신을 흔들어 댈 수 없게 하고, 그래서 결국 세상과 맞서고 변화시킬 커다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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