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34: 만월대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만월대


만월대(滿月臺)는 개성시(開城市) 송악산(松嶽山) 기슭에 있는 고려의 옛 궁궐터다. 동서 445m, 남북 150m 정도의 대지에 위치해 있었다. 1362년 홍건적의 침입에 의해 폐허로 변하게 된다. 고도(古都)의 옛 궁궐터는 영화(榮華)와 영락(零落)의 차이만큼이나 비감에 젖게 만든다. 조선 시대 수많은 시인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노래했다. 그들은 만월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귀리 심은 저 밭은 뉘 집 것인가

밭 가운데 주춧돌 남아 있구나.

고려왕이 춤추고 노래할 때도

밝은 달 이 저녁과 같았으리라.

燕麥誰家田 田中堦礎石

麗王歌舞時 明月如今夕

이양연(李亮淵),「만월대(滿月臺)」


한 개인의 무너진 옛 집터도 서글프다. 그러니 망국의 궁궐터야 말한 것도 없다. 휘영청 달이 뜬 밤에 만월대를 찾았다. 궁궐터는 귀리 밭으로 바뀌었고 주춧돌만이 옛 궁궐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시인은 무너진 터에서 온전한 궁궐을 떠올리고 거기에 살았을 사람들을 되살려낸다. 그 옛날 이렇게 좋은 달밤에 고려왕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삶이든 왕조의 역사이든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숭양의 남은 달빛 황량한 대 비추는데,

왕씨의 산하에는 어떤 객 찾아왔네.

돌 섬돌 절반쯤은 시든 풀에 덮여 있고,

다 무너진 토성에는 까마귀 돌아오네.

전 왕조 꿈과 같고 물은 절로 흐르는데,

폐원엔 무정하게 꽃 절로 피었구나.

천수문 앞에는 벼슬아치 흩어졌으니,

남은 터 부질없이 뒷사람 슬프게 하네.

崧陽殘月照荒臺 王氏山河有客來

石砌半欹衰草沒 土城全缺暮鴉回

前朝如夢水仍去 廢苑無情花自開

天壽門前冠冕散 遺墟空作後人哀

이좌훈(李佐薰), 「만월대(滿月臺)」


이 시에서는 잔월(殘月), 쇠초(衰草), 모아(暮鴉) 등 쓸쓸하고 쇠락한 이미지의 시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는 역사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 삶의 허망함을 읽는다. 옛날과 지금, 번영과 쇠락, 현존과 부재의 대비를 통해 허무감은 극대화된다. 5, 6구의 전조(前朝)와 물[水], 폐원[廢苑]과 꽃[花]의 대비는 역사의 무상함에 대한 자연의 영원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켰다. 천수문(天壽門)은 개성 동쪽의 천수사(天壽寺)의 남문으로 고려조 5백년간에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던 곳이었다.『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를 보면 최립의「사람을 기다리며[待人]」을 예로 들면서 천수문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고 나온다. 어쨌든 당시에는 관리들로 흥성거렸지만 지금은 버려진 궁궐만이 남아 있었다.



교목 깃든 까마귀에 석양이 비치는데

버려진 성 마을에는 유민들 살고 있네.

반파된 거친 누대 사슴들 찾아오고

오래된 주춧돌에 봉황 기린 훼손됐네.

세상 꽉 찬 온갖 사람 모두 다 세상 떠나

역대 조정 치란들을 물을 길 하나 없네.

아득해라, 200년 전의 일이여

들판의 풀과 꽃은 또 다시 새봄 맞네.

喬木棲鴉帶夕曛 廢城閭落是遺民

荒臺半毀來麋鹿 故礎猶存缺鳳麟

滿世賢愚同就盡 廿朝治亂問無因

蒼茫二百年前事 野草閑花又一春

양경우(梁慶遇),「만월대에서 회고하다[滿月臺懷古]」


만월대 근처에는 망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누대는 사슴들의 차지가 되었고 주춧돌은 무너져서 새겨져 있던 봉황과 기린들의 모습이 훼손되어 있다. 사람들은 잘난 이나 못난이나 모두다 세상을 떠나버려서 옛 왕조의 이야기는 물을 곳이 없게 됐다. 건물도 사람도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는 고려가 망한 지 200년의 세월이 지나간 시점이다. 봄이 찾아오니 풀과 꽃은 새롭게 피어난다. 황폐한 만월대에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궁궐은 왕조의 기억을 가장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만월대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궁궐터만 남아 있었다. 그곳은 한 왕조의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버려졌다. 찬란한 왕조도 화려한 건물도 세월 속에 모두 사라져 버리는 운명이 된다. 거기서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 초라한 개인의 삶이다. 결국 역사의 비애는 개인의 허무로 환원된다.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린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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