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나무꾼
나무꾼은 일반 백성과 초군(樵軍)이 담당했는데, 당시 생계유지를 위해 양반 가문의 산에 몰래 들어가 나무를 베는 투작(偸斫)이 성행했다. 나무꾼들은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집단을 이루어 공동 조직 하에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적게는 한두 명에서 열 명 또는 스무 명 정도의 규모가 보통이었지만 백 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도 있었다. 정상적인 땔감의 채취가 여의치 않으면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난 푸른 산속에서는
나무꾼 노래 먼 바람에 울리네.
소나무 사이에서 앞길 묻노니
송아지 탄 두셋 꼬마들 답하네.
日暮靑山裏 樵歌響遠風
松間問前路 騎犢兩三童
변종운(卞鍾運), 「산길을 가다[山行]」
나무꾼은 시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한 인물이다. 해질녘에 나무꾼의 노래가 들려온다. 나무꾼의 노래는 초부가(樵夫歌)라고 하는데, 대개는 신세를 탄식하는 소리들이 많다. 송아지를 탄 두셋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직도 나무꾼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배고파 꼬르륵대고 추위는 사무치는데,
눈 쌓인 절벽에는 마른 땔감 주을 곳 없네.
땔감이 귀한 것을 이상타 생각말길.
산속에 안 와보면 확실히 모르리라.
飢火燒膓凍逼肌 雪崖無處拾枯枝
請君莫怪薪如桂 不到山中定不知
김이만(金履萬),「나무꾼 아이[樵童]」
어린 나이에 감당키 힘든 노동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리거나, 혹독한 노동에 방치된 아이를 향한 연민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배가 고파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온다.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픈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부지런히 땔감을 모을 수밖에 없다. 허나 천지에 눈이 가득 쌓여서 쓸 만한 땔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땔감 값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겠지만, 한겨울 강추위에 산속으로 와 본다면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흰 머리 노인이 등에 땔감 지고,
구부정하게 가다 넘어지고 자빠진다.
저물녘 사립문에 이르게 되자,
발바리가 꼬리를 흔들며 오네.
白頭背負薪 僂行顚復蹶
及暮到柴門 猧兒搖尾出
이진백(李震白), 「나무꾼 노인[樵叟]」
늙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의 무게는 더더욱 무겁기만 하다. 삶의 반전을 꿈꾸던 젊은 날의 호기는 그대로 삶의 운명에 짓눌리어 노년의 체념으로 바뀌었다. 직립(直立)하지 못한 꿈처럼 그렇게 어느새 허리는 굽었고, 평탄치 못한 삶처럼 자꾸만 넘어지고 자빠진다. 노동에서의 해방을 알리는 전령처럼 발바리가 마중을 나오고, 내일의 노동을 위한 휴식은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허락되었다. 그래도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 희망은 역시 피붙이에게서 찾기 마련이다.
서풍이 어찌 그리 처연하던가.
초목 누렇게 시듦 재촉하구나.
사람들이 땔나무 베러 가는데,
바라보니 산 위가 시장과 같네.
겨울 한 철 입을 옷과 먹을거리는
산으로 살림 밑천 삼았지.
이른 새벽 서리·이슬 몸에 맞았고,
하루 종일 범과 표범 속에 있었지.
메고 지느라 양 어깨 붉게 상처 입고,
나무 해오느라 열 손가락 벗겨졌네.
아! 저 열심히 일하는 무리들
이들은 우리 동포들이구나.
생각건대 나는 따스한 온돌에 있으면서,
누워서 편히 지냈을 뿐이로구나.
마음속으로 먼저 부끄러워하니,
야인이 군자 봉양함은 당연하다고 감히 말하랴.
불 지피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니,
“땔감 하나라도 계수나무처럼 보아라”
西風一何凄 草木催黃委
居人去刈薪 山上望如市
三冬衣與食 以山爲生理
凌晨霜露中 及日乕豹裏
擔負頳兩肩 採取禿十指
嗟彼勤勞輩 是吾同胞耳
顧我處煖堗 偃便而已矣
中心先自愧 敢說養君子
寄語吹火者 一介桂以視
박윤묵(朴允默),「땔나무 베기[刈薪]」
겨울을 나려면 땔감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나무를 베느라 산 위로 모여든 나무꾼으로 북적이는 모습이 마치 저잣거리와 같다. 새벽에는 서리와 이슬에 몸을 적실 수밖에 없고, 땔나무가 온전히 남아 있는 좀 더 으슥한 곳을 찾으려면 호랑이와 표범을 만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고된 노동에 어깨는 짓무르고 손가락이 벗겨지는 등 몸 중에 성한 곳이 없다. 전반부에서 나무꾼의 현실 문제를 적시한 후 뒤에는 시인 자신의 소회를 담았다. 따스한 온돌에서 편히 있는 것은 누군가의 고단한 노동 덕분이란 자각에까지 이른다. 야인들이 군자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말해왔지만, 그들의 고초와 고생을 보니 단순히 그리 여길 것이 아니었다. 불을 지피는 아이에게 조그마한 마들가리 하나라도 계수나무처럼 귀히 여기라며 당부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무하기는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장시간 이뤄지는 고단한 노동이었다. 험한 산길에서 낙상(落傷)할 수도 있고, 호환(虎患)의 피해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일이다. 아무래도 겨울에 땔감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추위와 폭설은 그들의 고생에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이 희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고역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식은 부모를 위해, 부모는 자식을 위해 그렇게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작업을 하다 얻은 품속 과일과, 집에서 기다릴 노모가 차려놓을 따뜻한 밥상은 어둡고 늦은 귀갓길에 작은 랜턴 불빛같이 환하게 그들을 비추어주는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