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안중근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은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 신자가 되어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거사 전에 동지들과 단지(斷指)를 함께 하며 조국 독립에 헌신할 것을 다짐 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였다.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 형장에서 32살의 나이로 순국(殉國)하게 된다. 안중근은 한국에서 간행하는 거의 모든 위인전집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최근에 뮤지컬「영웅」(2009)이 만들어져서 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안중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캄캄하니
뜻 있는 사나이가 어찌 편히 죽으려나
평화로움 못 이루니 여전히 강개하고,
침략 정책 유지하니 참으로 가련하네.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안중근(安重根), 「無題」
그는 옥중에서 미완성의『동양평화론』과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 여러 편의 유묵(遺墨)을 남겼다. 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일본일들도 안의사를 깊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하는 말로는 사형 집행을 며칠 앞두고 취조관의 한 사람인 사카이 경시가『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고 안 의사에게 결론만이라도 써주기를 요청하자 안 의사가 위의 시를 써준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그가 주장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동양 3국이 평화를 공존하지 못하는 것과 일본이 침략전쟁에 빠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평생에 벼르던 일 지금에 끝냈으니
죽은 데서 살길 도모함은 대장부 아니도다.
몸은 조선 땅에 있었어도 만방에 이름 떨쳤으니
살아 백세 못살아도 죽어 천년 살아가리.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안중근의 의거(義擧)에 중국인들도 깊이 감동하여 원세개(袁世凱), 손문(孫文), 장개석(蔣介石) 등이 시를 남겼다. 위의 시는 원세개의 시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을 사나이다운 일이라 칭송한 다음에, 의거의 대가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름다운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1]
평안도 장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양 죽이듯 통쾌하게 나라 원수 죽였다네.
죽기 전에 좋은 소식 내가 직접 듣게 되어
국화 옆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춤을 추네.
平安壯士目雙張 快殺邦讎似殺羊
未死得聞消息好 狂歌亂舞菊花傍
[2]
블라디보스토그항 하늘에서 송골매처럼 맴돌다가
하얼빈역 앞에서는 벼락이 불 품었네.
수많은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한꺼번에 추풍낙엽처럼 수저를 떨어뜨렸으리.
海蔘港裏鶻摩空 哈爾濱頭霹火紅
多少六洲豪健客 一時匙箸落秋風
[3]
예로부터 어찌 망하지 않는 나라 있었으리.
소인배들이 한결같이 굳센 나라 무너뜨렸지
다만 하늘 떠받칠 이런 인물 얻었으니
외려 나라 망할 때도 이토록 빛나도다.
從古何甞國不亡 纖兒一例壞金湯
但令得此撑天手 却是亡時也有光
김택영(金澤榮), 「의병장 안중근이 나라의 원수를 갚았다는 소식을 듣고[聞義兵將安重根 報國讎事]」
이 시는 김택영이 60세 되던 해(1909년)에 쓴 것이다. 첫수에서는 나라의 원수인 이토를 처단하여 죽인 일을 양을 죽인 일에 빗대며 낭보를 전해들은 반갑고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둘째 수에서는 안의사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얼빈에서 있었던 행적을 떠올리면서 의거의 과정을 전달하였다. 마지막에서는 매국노에 의해서 망국의 과정을 재촉할 때 안의사가 구세주나 영웅처럼 등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삶을 보면 예양(豫讓)이나 형가(荊軻)가 떠올려진다. 삶의 장단(長短)이야 무슨 상관있겠는가. 대의(大義)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꽃다운 서른두 살 짧은 삶을 마감했다. 그는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도 못했어도 더 길고 오래갈 이름으로 우리 곁에 항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