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37: 다듬이 소리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다듬이 소리


이제는 사라진 소리들이 있다. 엿장수 가위 소리, 동네 골목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 소달구지 소리, 도리깨질 소리, 상엿소리, 버스 차장의 오라이 소리 등은 이제는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다듬이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다듬이 소리는 시인들의 단골 소재였다. 두보(杜甫)의「도의(擣衣)」란 시에, “수자리 나간 남편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아, 가을 되니 다듬잇돌 닦아 놓누나.[亦知戍不返 秋至拭淸砧]”라 하였고, 이백(李白)의「자야오가(子夜吳歌)」란 시에, “장안에는 한 조각달이 밝은데, 많은 집에서 다듬이 소리 들려오누나[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라 하였다. 이처럼 다듬질을 소재로 한 시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겨울옷 당신에게 전하지 못해

밤깊도록 다듬이 치고 있네요.

등잔불도 제 신세와 비슷하여서

눈물 다 마르고서 속도 태워요.

未授三冬服 空催半夜砧

銀缸還似妾 淚盡却燒心

김극검(金克儉), 「규방의 정(閨情)」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남편이 집을 비우고 있다. 겨울옷을 짓는 걸 보면 겨울이 되기 전에 남편은 집을 떠나 있었다. 밤늦도록 이 옷을 만든다고 고생하지만 남편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전달한다 하더라도 남편이 고마워할지도 모르겠다. ‘공(空)’이란 글자를 통해 아내 스스로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등잔불에 기대어 다듬질을 하다가 문득 등잔불이나 자신의 처지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등잔불에 있는 기름이 다 떨어지고 나면 심지가 타는 것처럼, 자신도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게 되자 마음속이 타들어갔다.




무슨 일로 밤새도록 방망이 두드리나

팔목이 시리도록 못 쉬는 다듬이 소리.

저 소리는 내 집의 다듬질과 사뭇 달라

이웃집 다듬질에 유달리 수심이 나네.

何事丁東到曉頭 敎渠酸腕未能休

隣砧不與家砧別 偏向隣砧一段愁

정학연(丁學淵), 「가을 다듬이 소리[秋砧]」


정학연은 ‘가을 벌레[秋蟲]’, ‘가을꽃[秋花]’ 등 10종의 가을 경물을 제재로 쓴 100여 수의 연작시를 남기고 있다. 진정 가을의 시인이라 할 만하다. 이 시도 역시 가을 다듬이 소리를 두고 지은 것이다.

담 너머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에 이웃집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이웃집 아낙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밤새도록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다듬잇돌에 분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 화평한 다듬이질 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웃집 아낙의 불편한 심사에 마음이 쓰인다. 그 아낙은 무엇 때문에 저리도 마음이 아픈 걸까?




어떨 때 마음 가누기 어려웁던가

맑은 밤 다듬이 소리 들려올 때지.

처음에는 외방망이 조용조용 들리다가

어느새 쌍방망이 뚝딱뚝딱 울리었네.

외방망이는 은병에 물시계 남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면,

쌍방망이는 연못에 소낙비 내려 천개 구슬 쏟아지는 소리이네.

문 열고 하늘 보면 달빛은 옥과 같고

대 그림자 너울대고 지붕엔 서리 가득.

何處難爲情 淸夜搗衣聲

寂寂初聞隻杵動 跳跳忽作雙杵鳴

隻杵銀壺殘漏數點滴 雙杵荷塘急雨千珠傾

開門看天月如玉 竹影䙰褷霜滿屋

정약용(丁若鏞),「세 가지 소리[三聲詞]」 중 첫 수


정약용이 1802년에 유배지인 강진으로 아들 정학연이 문안 왔을 때 답답한 심경을 적은 시다. 그를 괴롭게 만드는 다듬이 소리, 빨래 방망이 소리, 수레소리 등을 소재로 세 편의 시를 썼다.

가을밤에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는 괴롭기 한량없다. 외방망이로 박자를 잡다가 쌍방망이로 장단을 옮겨 탄다. 이런 외방이질과 쌍방망이질의 변주(變奏)를 물시계에 남은 물방울과 소낙비로 기막히게 빗대어 표현했다. 더 이상 이 소리를 견딜 수 없어 창문을 열어 본다. 하늘에 둥근 달이 떴고, 대밭은 바람에 흔들리며, 지붕에는 서리가 내려 앉아 있었다. 방망이질은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을 소환해냈다. 아! 눈물 나게 그립다.




딱하구나. 남자의 몸뚱이여

전부다 여자 손에 맡기고 있네.

내일 아침 차려 입고 집나가서는

그 얼굴 두껍게도 뽐을 낼 테지.

可憐男子身 都付女人手

明日拂衣行 揚揚顔亦厚

조면호(趙冕鎬), 「새벽 다듬이 소리[曉砧]」


방망이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고단한 노동의 신음이었다. 조면호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남자들은 일상의 모든 것을 여성에게 의지하면서 당연시 한다. 밤새 다듬이질을 해서 옷을 챙겨 놓았더니 애초부터 옷이 그랬던 것처럼 으스대며 집을 나선다. 단순히 여성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에서 그치지 않고, 고마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기만 한 남성의 행태를 정조준해서 비판했다.




다듬이 소리는 두 개의 방망이가 경쾌한 소리를 내지만 어쩐지 구슬프고도 서글프다. 진작 다리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다듬이질은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의 옷을 장만하는 아낙의 마음을 담고 있어 일종의 규원시(閨怨詩)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다듬이 소리는 어머니와 아내를 먼저 연상케 하여 고단하게 힘겨웠던 여성의 삶을 아프게 말해준다.


다듬이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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