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38: 거사비(去思碑)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거사비(去思碑)


거사비(去思碑)는 선정(善政)을 베푼 감사(監司)나 수령(守令) 등이 떠난 뒤에 그들이 재임했을 때의 공덕을 기리어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이다. 공덕비(功德碑), 불망비(不忘碑), 송덕비(頌德碑), 선정비(善政碑), 영사불망비(永思不忘碑), 유애비(遺愛碑) 등으로도 불린다. 거사비의 취지는 원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관리가 그동안에 했던 선정(善政)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백성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두어 자발적으로 빗돌을 세워 주었다. 거사비에는 어떠한 사연들이 숨어 있었을까?




돌 복판에 대놓고 새겨놨으니

인심을 참으로 볼 만 하구나.

쌀알로 평생 배부름 생각했고

실올로 백년 추위 품어줬다네.

득어망전 하기란 쉽지 않아도

백성 속여 먹는 일 어렵지 않네.

자연스레 세워진 오래된 미륵

홀로서서 강가만 바라본다네.

石腹公然鑿 人心大可觀

粒憶平生飽 絲含百歲寒

魚忘眞未易 狙喜果非難

天然舊彌勒 獨立望江干

황오(黃五),「선정비(善政碑)」


선정비가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빗돌에는 관원이 백성에게 베풀었던 치적(治績)들이 상세히 적혀 있다. 어망(魚忘)은 득어망전(得魚忘筌)의 준말로, 『장자(莊子)』,「외물(外物)」에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고 나면 다시 덫을 생각하지 않는다.[得魚忘筌 得兎忘蹄]“라 나온다. 원래 목적을 달성하면 수단을 잊는다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정이 실제로 행해졌다면 굳이 선정비를 세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저희(狙喜)는 원숭이처럼 잘 속이며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전국책』에 나온다. 여기에서는 관리가 백성을 속여먹는 일을 말한다. 5,6구는 선정을 베풀고 자랑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지만, 백성들을 속여 먹는 것은 쉬운 일이라 말한 것이다. 자연스런 신앙심의 발로로 누군가에 의해 세워진 미륵보살상은 그렇게 무심한 듯 서 있다. 선정비와 미륵보살상의 대비를 통해 남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밝혔다.




거사비 세운다고 함부로 돈 거둬가니

백성들 유랑함은 그 누가 시켰던가

빗돌은 말도 없이 큰 길 막고 서 있는데

신관은 어찌 그리 구관 닮아 어질 던지

去思橫斂刻碑錢 編戶流亡孰使然

片石無言當路立 新官何似舊官賢

-이상적(李尙迪 1803~1865),「길가의 거사비에 대해 짓다[題路傍去思碑]」


거사비 세운다고 마구 돈을 거둬가서 백성들은 떠돌면서 유리걸식(流離乞食)하게 되었다. 선정(善政)을 감사하는 의미로 세워져야 할 거사비가 오히려 학정(虐政)을 부추기고 있었다. 새로운 관리는 이제 떠난 옛날의 관리를 닮아 어질기만 하다며, 이런 우스운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옛날의 관리들은 빗돌에 한결같이 어질다고 새겨져 있었지만 실제로 어질지 않았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새로 부임한 관리도 역시 어질지 않았다.




새 비석은 웅대하고 옛 비석 부셔져서

쭉 서 있지만 비석이 부끄러움 없겠는가

백성 고혈 마르게 하는 폐습 상관 않는다면

이때부터 모든 사람 좋은 관리 될 것이네.

新碑宏麗舊碑殘 林立能無汗石顔

不關風弊民膏竭 自是人人做好官

한장석(韓章錫), 「벼슬길에서 선정했다는 거사비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고 있었으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분개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다[官途善政 去思之碑 在在成林 口占示慨]]」


웅장하고 화려하기 만한 새로 세운 비석부터 마모되어 가는 오래된 비석까지 여기저기 쭉 늘어서 있다. 좋은 관리라는 것이 사실 별 것이 아니다. 백성들 괴롭게 가며 거사비를 세우는 폐습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관리가 되는 첩경이다. 이처럼 당시 관례에 따라 거사비를 남발해서 세우던 폐습을 비판하고 있다.

거사비를 세우는 원래의 취지는 갈수록 퇴색해가다, 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금전을 착취하는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로 뒤바뀌고, 기리지 않아도 될 일들이 기려져야 할 일로 꾸며지게 되었다. 정조 때에는 갑자년(1744, 영조20) 이후에 세운 거사비들을 모두 철거하라는 명까지 내려졌지만, 그 이후에도 거사비를 세우는 풍조는 계속 성행하였다.




권필(權韠)은 「충주석(忠州石)」에서 이미 세도가들이 신도비를 세우는 풍조를 비판한 바 있다. 선업(先業)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야 할 일이지 돌덩어리에 새길 일이 아니었다. 관리들의 묘도문자(墓道文字)에는 그 사람 생전에 부임하는 곳마다 거사비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들이 훈장(勳章)처럼 단골로 등장한다. 그중에 실제로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들은 얼마나 됐을까? 거사비에 대한 시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 거사비를 보면서 느끼는 자랑스러움이나 자신의 거사비를 보는 멋쩍음도 보인다. 돌에다 누군가를 기린다는 일이 다 부질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 다 마모되어 흉물스럽게 길가에 방치될 뿐 아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일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입으로 전해지면 그뿐이다.


거사비(去思碑)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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