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병아리
병아리는 한문으로 계아(鷄兒) 또는 계추(鷄雛) 등으로 쓴다. 내 또래라면 다들 육교에서 팔던 병아리를 사서 박스에 넣고 키웠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집에서 지극정성 애를 써서 키워 보아도 결국 시름 시름 앓다가 죽어간다. 병아리의 입을 벌리고 좁쌀을 집어 넣어주면서 아무리 살리려고 해도 살릴 수 없었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도 그런 아픔이 있었던지「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를 만들어 얄리라는 병아리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한시에서 병아리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을까?
꽃 잎에 들어가서 흰나비 삼키고
물 마시고 봄날에 잠만 자더니
가을 오자 꼬끼오 한번 우니까
비바람 속 사람들 길을 떠나네.
入花呑白蝶 飮水眠靑春
秋來能一唱 風雨發行人
황오,「병아리[鷄兒]」
꽃잎에 들어가 흰나비 삼키고 나와서 물 마시고 나면 하냥 꾸벅꾸벅 졸고 앉았었다. 그런데 가을이 찾아왔더니 그새 부쩍 자라 있었다. 제법 닭과 같은 소리를 울어대서 비바람 치는데도 사람들은 날이 밝았나 생각을 하고 길을 떠난다. 1, 2구와 3,4구 사이에는 시간의 격절(隔絶)이 있다. 계절이 바뀌자 훌쩍 자란 병아리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수탉은 색이 붉고 암탉은 누른데,
5월 초순에 병아리 아홉을 낳았도다.
(병아리) 하나하나 둥글게 어미 발을 도는데,
털과 깃 들쭉날쭉 제각기 달랐다네.
백 일도 안됐는데 날개 짓 능히 배워,
아침마다 높아져서 몇 자에 이르렀네.
해 따숩고 모래 밝은 옛 복숭아 둑에,
울 밑의 벌레들은 작아서 쪼을 만하네.
때때로 목 빼지만 소리 길진 못한데,
나무 아래 날개 치니 푸드득 소리 나네.
바구니 속 낱알들을 땅 가득 뿌리노니,
한꺼번에 앞 향하여 서로 무리 부르는데,
새끼 급히 불러서 닭장으로 몰아넣은 건,
하늘 위 솔개들이 풀밭을 노려서네.
雄雞色赤雌雞黃 五月初旬生九雛
箇箇團圓旋母脚 毛羽參差各自殊
未過百日能學飛 朝朝漸高至數尺
日暖沙明古桃畔 籬下虫蟻細可啄
有時引頸聲不長 樹底鼓翼聞拍拍
篝中細粒鋪滿地 一時向前羣相呼
急喚兒童驅入窠 上有飛鳶睨平蕪
이좌훈(李佐薰), 「닭이 병아리를 낳다[鷄生雛]」
이 시는 닭들이 아홉 마리 병아리를 낳아서 키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날개 짓을 배우고 벌레들을 쪼아먹으며 꼬끼오 울어대는 것까지, 점점 닭이 되기 위한 성장과정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썼다. 그래도 아직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지 솔개가 하늘에 뜨자 부모 닭들이 급히 병아리들을 피신시키고 있다.
날개로 동그란 알 덮어 주어서
그럭저럭 이십 일 지나가도록
암컷은 자애롭게 부지런히 어미 노릇하니
껍질이 깨지면서 병아리 나왔네.
새끼를 먹이려고 벌레 구하고
까치와 까마귀 피하라고 조심시켰네.
닭을 보면 나도 배운 것 있으니
양자 키우는 수고 마다 않으리.
翼覆團團卵 自然卄日踰
雌慈勤作母 甲坼乃生雛
哺子求虫蟻 警兒避鵲烏
觀鷄吾有得 負臝不辭劬
남정일헌(南貞一軒), 「병아리(鷄兒)」
남정일헌은 일찍이 스물 살에 남편을 잃었다. 게다가 남편 사이에서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여 키웠다.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아내로서의 삶은 중단됐지만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닭이 병아리를 키우는 과정은 꼭 사람이 제 자식을 키우는 과정과 닮아 있다. 대개 21일 동안 알을 품는데 그 기간 동안은 거의 온종일 알만 품고 있다. 그렇게 병아리가 태어나면 벌레를 구해다가 먹이고 천적들에게 해꼬지 당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닭의 모정을 보고 내 배 아파 나온 아이는 아니지만 양자(養子)를 잘 키워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병아리는 강아지와 함께 어린 나이에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동물이다. 윤동주는「병아리」라는 동시를 다음과 같이 썼다. “뾰, 뾰, 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 꺽, 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으로/ 다 들어갔지요. 여기서 엄마 닭은 식민지 상태의 우리나라를, 병아리는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로 볼 수도 있지만, 그저 귀여운 병아리의 모습을 다룬 시로 읽어도 충분하다. 한시에서 병아리는 대개 병아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거나, 어미닭과 함께 병아리를 다뤄 모성(母性)과 양육(養育)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