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소[牛]
소는 참으로 고마운 동물이다.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하였고 소의 힘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기도 하였으며, 소를 도축해서 고기를 먹기도 했다. 소의 평균 수명은 보통 15년에서 20년인데, 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소는 의로운 동물로 주인이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하자, 주인을 구해주기도 했다. 영화 ‘워낭소리(2008)’는 노인과 소와의 오랜 우정을 다룬 바 있다. 한시에 소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소타는 게 즐거울 줄 몰랐었다가
말 없고서 그제야 알게 되었네.
해질녘에 풀 향기 가득한 길에
봄날 해도 다 함께 더디게 지네.
不識騎牛好 今因無馬知
夕陽芳草路 春日共遲遲
양팽손(梁彭孫), 「우연히 읊다[偶吟]」
매번 말을 타고 다니다가 어쩐 일인지 말이 없어지자 소를 타고 다녔다. 소도 천천히 가고 봄날 해도 더디게 진다. 소가 가는데 풀 향기가 코에 향긋하게 풍겨온다. 말을 탔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의 느낌들을 이제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빠르게 속도만 욕심내며 살아왔구나. 그래 천천히 만나는 사람과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리라.
조용한 봄 도림에 그림자 오래 차가울 때
깨진 구유, 빈 외양간 근심스레 쳐다봤네.
담배가 입김을 나에게 빌려주니
난간 가에 무소가 생겨나게 되었다네.
春寂桃林影久寒 破槽空廐悄相看
南婆借與吹噓力 生出欄邊黑牧丹
유의건(柳宜健, 1687~1760),「소를 사고서……[久無耕牛, 値南草踊貴, 出所藏得錢, 買一黑牛戱吟]」
예나 지금이나 소는 큰 재산 목록이었다. 1970-80년에는 소를 팔아 아이들 대학공부를 시켜서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牛骨塔)이란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시는 소를 산 기쁨을 적고 있다. 오랫동안 소도 없이 살고 있어서 구유는 깨졌고 외양간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담뱃값이 폭증하여 그 덕에 소를 살 수 있었다.
아전들 용산 마을에 들이닥쳐서
소를 뒤져 관인에게 넘겨주노니
소를 몰고 저 멀리 가버리는 걸
집집마다 문에 기대 바라만 보네.
사또의 노여움만 막으려 하지
그 누가 백성들의 고통을 알랴.
유월에도 쌀 달라 요구를 하니
수자리보다 고통이 한층 심하네.
…중략…
부인은 혼자되어 남편이 없고
영감은 늙도록 자식 손자 없었네.
소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니
눈물 떨어져서 옷 흠씬 적시네.
마을 풍경 몹시도 찌들었는데
아전은 눌러앉아 어찌 안 돌아가나
쌀독은 바닥난 지 오래됐으니
무슨 수로 저녁밥 지을 것인가
생계를 끊어지게 만들었으니
마을마다 다함께 오열하누나.
소 잡아 권세가에 바치게 되면
수령 재주 그것으로 구별된다지
吏打龍山村 搜牛付官人
驅牛遠遠去 家家倚門看
勉塞官長怒 誰知細民苦
六月索稻米 毒痡甚征戍
…중략…
婦寡無良人 翁老無兒孫
泫然望牛泣 淚落沾衣裙
村色劇疲衰 吏坐胡不歸
甁甖久已罄 何能有夕炊
坐令生理絶 四隣同嗚咽
脯牛歸朱門 才諝以甄別
정약용,「용산의 아전[龍山吏]」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인 1810년에 수령과 아전의 횡포에 고통 받는 농민의 모습을 목격하고 쓴 시이다. 18~19세기에는 삼정(三政)의 문란에 따른 농우(農牛)의 수탈이 극심했다. 아전들이 소를 찾아내어 끌고 가는 것을 넋이 빠져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전들은 백성들의 고통은 모른 척하고 사또의 비위만을 맞추려 했다. 조세를 대신하여 소를 거둬가는 것은 농민들의 삶을 완전히 파탄으로 몰고 가는 행위였다. 아전은 사또를 위해 더 가혹하게 징수하고 사또는 아전들이 거둔 것으로 권세가에게 바쳤다. 불의의 카르텔 때문에 백성들만 고통을 받아야 했다. 자신들의 안일과 출세를 위한 일이 누군가의 생명과 희망을 빼앗은 일이 되었다.
한 해에도 몇 천 마리 소 떨며 죽게 되니,
원한 기운 하늘까지 나쁜 기운 흐른다네.
묻노니 농가에서 봄 농사 하는 날엔
도리어 개와 돼지 시켜 대신 밭 갈 것인가?
一年觳觫幾千牛 寃氣窮霄沴氣流
借問田家東作日 還令犬豕代耕不
김평묵(金平默), 「소잡는 것을 탄식하다[殺牛嘆]」
소가 병이 들어 죽기도 했다. 유의건(柳宜健)의 「소가 병들어 많이 죽자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다…[牛病多死, 人皆憂之. 吾家無牛獨不憂, 然牛盡死, 耕種時借得無處, 獨安得不憂. 偶吟.]에서는 “소 있으면 병들까 근심하고 병들면 죽을까 근심하니, 난 본래 소가 없어 근심치 않아도 되네. 다만 두려운 것은 이웃집 소 다 죽으면, 서쪽 밭의 농사에는 뉘 집 소 빌릴 것인가[有牛憂病病憂死, 我本無牛可不憂. 但恐人家牛死盡, 西疇有事借誰牛]”라 하였다. 이처럼 우역(牛疫)이 돌면 소들이 죽어 나가서 당장 농사를 짓는 일마저 막막해졌다.
보통 소의 도축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때때로 도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2구에서는 소를 도축하는 일은 불인(不仁)한 일 이므로 소를 죽이게 되면 흉년이나 우역 등 나쁜 일이 발생할 빌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4구에서는 도축 이후에 농사철이 되면 소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소를 타면서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살펴 봤다. 그리고 소를 어렵게 구하게 되면 기뻐하였고 소를 빼앗기게 되면 탄식했다. 소의 소유와 약탈이 희비를 엇갈리게 하였다. 소를 잡는 것을 꺼려하였고 소가 죽으면 슬퍼하였다. 그렇다고 소가 재산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는 고단한 삶을 함께 헤쳐 나가는 오래된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