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안경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안경을 쓴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다산 정약용이나 매천 황현의 안경 쓴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지금까지 남아 있고, 여러 문헌에서 안경을 착용했던 기록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정선은 80여세가 되어도 여러 겹의 두꺼운 안경을 쓰고 촛불 아래에서 세밀한 그림을 그렸는데 조금도 실수가 없었다(謙齋年八十餘, 眼卦數重鏡, 燭下作細畵, 不錯毫髮)”라고 하며 노대가의 예술혼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경, 이 고마운 물건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두 알의 둥근 안경 노안에 알맞아
한번 쓰면 여러 책 볼 수 있다네.
묵은 좀도 잘 보여 쓸어내겠고
노(魯)와 어(魚)란 글자도 환히 보이네.
일본에선 귀한 물건 살 수 있겠고,
연경에선 가격이 너무 비싸네.
그중 가장 좋은 건 서양산이라
역관에게 부탁을 해야 하겠네.
雙圓宜老眼 一着看群書
歷歷開陳蠹 昭昭辨魯魚
日東珍或售 燕北價非處
絶品西洋鑄 行當問象胥
신택권(申宅權),「방안의 잡물을 노래하다[室中雜詠二十首] 중 안경」
늙어 침침한 눈으로 책을 보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경을 쓰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좀을 먹은 곳도 뚜렷이 뵈고, 비슷한 글자도 환히 구분이 된다. 안경을 다룬 시에서 시(豕)와 해(亥), 노(魯)와 어(魚) 같은 엇비슷한 글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이 관용적으로 등장한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모두 안경이 귀한 물건이지만, 그중에 서양에서 나온 것이 가장 높이 쳐주는 것이라 역관에게 부탁해 하나쯤 얻고 싶다고 했다. 안경의 품질도 천차만별이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구해 일상생활에 편히 사용하고픈 마음을 담았다.
남국에서 만들어진 벽옥(碧玉) 안경을
고당(高堂)에서 나이 드셔 쓰시게 됐네.
등불 향하면 더욱 또렷해지고
안경 갑에서 꺼내면 더욱 곱도다.
눈 밖으로 천지는 크게 보이고
눈썹 새에 해와 달 달려 있는 듯.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만권의 책
노안은 온통 네 힘 빌려야하지.
南國碧玉鏡 高堂白髮年
向燈逾歷歷 出匣更娟娟
膜外乾坤大 眉間日月懸
床頭萬卷在 老眼爾多權
목만중(睦萬中), 「안경(眼鏡, [戊午○十二歲作])」
이 시는 목만중이 12살 때 지은 것이다. 할아버지 목경연(睦慶衍)이 안경이란 제목으로 시를 지어보도록 시키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읊었다고 한다.『삼명시화』에도 실려져 있다. 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이 눈에 비친 안경의 공능을 재치 있게 표현하여, 어릴 적부터 만만치 않은 시재(詩才)를 선보이고 있다.
병든 눈 흐린 증세 심하더니만
안경 끼자 훨씬 더 밝아졌었네.
서양에서 만들었다 예전에 들었는데
지금 영남 병영에서 보내주었네.
매우 작은 글자도 구별이 되니
공벽보다 오히려 더 귀중하네.
말이 망아지로 변함 알게 됐으니
애써 소년 시절 뜻 가져본다오
病眼昏花甚 玻瓈頓助明
曾聞泰酉制 今自嶺南營
數墨纖毫別 許珍拱璧輕
方徵駒馬變 強作少年情
이익(李瀷), 「병사(兵使) 인숙(仁叔)이 안경을 보내준 데 감사하다[謝仁叔兵使惠靉靆鏡]」
이익은 안경에 대하여 이 시 이외에도 「안경에 대한 노래[靉靆歌]」를 남긴 바 있다. 그 당시에는 안경을 요청하기도 하고, 사서 구해다 주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의 것을 물려받기도 했다. 이 시는 지인이 안경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다. 대개 안경에 관한 시들은 안경을 쓰기 전에 흐릿한 시야가 선명하게 바뀌는 사실을 적시한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안경은 영남 병영에 있던 병사(兵使)의 손에 흘러 들어갔다가 다시 이익에게 전해졌다. 마지막 7∼8구에서 말이 망아지로 변했다는 것은『시경』「소아(小雅) 각궁(角弓)」에 “늙은 말이 도리어 망아지가 되니 뒷일을 돌아보지 않고 힘을 쓴다.[老馬反爲駒 不顧其後]”라 한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처럼 눈이 좋아지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은 김성일의 안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임진왜란 전후에 안경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안경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된 것은 훨씬 뒤였다. 안경은 처음에는 매우 고가여서 말 한 마리 값과 맞먹다는 기록도 있다. 안경에 대한 풍습도 남달랐다. 임금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었고, 자기보다 어른 앞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것은 대단한 결례(缺禮)였다. 이러한 전통은 구한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모든 신체 기간이 그러하듯 눈도 나이가 들면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노안(老眼)은 보통 40세를 전후하여 나타난다. 옛 사람들에게 안경은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소용에 닿고 고마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안경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는 고마움이나, 구해달라는 요청과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안경을 실수로 깨뜨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