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42: 거미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거미


거미는 ‘지주(蜘蛛)’. ‘희자(蟢子)’, ‘희자(喜子)’, ‘희주(喜蛛)’, ‘희모(喜母)’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베 짜는 실력을 믿고 아테나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따냈지만 아테나의 노여움으로 거미로 변하게 된 여인 아라크네(Arachne) 이야기가 나온다. 거미와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공작새는 거미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심전(心田) 박사호(朴思浩)의 연행록에 “공작은 다른 것은 먹지 않고 오직 거미만을 먹는다.[孔雀不食它物, 惟食絡蜘蛛.]”라고 나온다. 한시에서는 거미나 거미줄이 등장하곤 하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침에 사람 옷에 거미가 붙더니만

갑자기 내 집 문을 그대가 두드렸네.

대평상 방석에서 담소 다 마치기 전

지팡이 짚고 다시 해운 향해 돌아가네.

朝來蟢子着人衣 忽謾逢君叩我扉

蒲薦竹床談未了 一筇還向海雲歸

이수광(李睟光), 「영동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만나다[遇友生歸嶺東]」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거미도 마찬가지다. 거미가 내려오면 기다리는 사람이 오고 거미가 옷에 붙으면 친한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침에 거미가 옷에 붙어서 무언가 기쁜 소식이 있을 줄 알고 있었더니, 친구가 갑자기 방문을 했다. 둘이서 담소를 충분히 나누지 못했지만 친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급히 길을 떠난다. 충분히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거미는 반가운 소식을 의미했다.




석 달간 봄바람이 꿈결처럼 지나가고

해당화 가지에는 연지가 걸려 있네.

거미도 봄빛을 애석히 여길 줄 알았던지

가지 끝에 그물 쳐서 지는 꽃 지키었네.

九十東風夢裡過 臙脂留却海棠窠

蜘蛛亦解憐春色 遮網枝頭護落花

김인후(金麟厚), 「해당화 가지에 거미줄이 쳐졌는데 떨어진 꽃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시를 짓다.[海棠花枝 有蛛網 落英留掛 因以賦之]」


봄날이 훅하고 지나가 버렸다. 해당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속절없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미가 해당화 가지에 거미줄을 쳐놓았는데 마침 거기에 지던 해당화 꽃잎이 걸려 있었다. 이 사소한 장면을 시인은 거미가 봄이 가는 것을 애석해하여 떨어지는 꽃잎을 거미줄을 쳐서 걸리게 하여 지켰다고 해석 했다. 이 시 뿐 아니라 다른 시들도 거미가 거미줄을 쳐서 떨어지는 꽃을 걸리게 하는 것을 두고 봄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 만류하는 것으로 보았다.




가슴 속 것 다 빼내어 그물을 만들어서

안개 섞고 이슬 엮어 처마 끝 덮었다네.

바람 부는 아침에 사뿐히 날던 나비 들러붙고,

등불 켠 저녁에는 어지럽게 달려 들던 나방 걸리었네.

게는 딱지 본래 있고 누에는 고치 지으며

귀뚜라미 베를 짜고 새는 베틀 북 같네.

사람에게 보탬 없이 교묘하게 동물 해치니,

괴이하다 몸은 작으면서 기교 크게 많음이

抽盡心腸作網羅 和煙綴露覆簷阿

風朝苒苒黏飛蝶 燈夕紛紛罥撲蛾

蟹自有匡蠶則績 蟲能催織鳥如梭

於人無補工殘物 怪爾形微巧太多

유계(兪棨), 「거미를 읊다[詠蜘蛛]」


이 시에서 거미는 포식자로 등장한다.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자 나비와 나방들이 거미줄에 들러붙는다. 게, 누에, 귀뚜라미, 새는 각기 자신의 생태대로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오직 거미만은 거미줄을 쳐서 애꿎은 동물을 해친다. 거미줄은 종종 사람을 괴롭히는 세상의 함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거미가 아무 것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동물이라 평가했다.




은빛 실 뱃속 가득 줄줄 나와서

처마 틈에 비스듬히 거미줄 치네

비에 젖어 거미줄 뒤집어지고

바람결에 비단 장막 흔들리었네.

반딧불 걸리니 별이 움직이는 듯

금빛 부서짐은 달빛 비친 것이네.

꽃 찾는 나비에게 전해주나니

날아다니다 걸릴까 걱정이라고

銀絲生滿腹 簷隙掛橫斜

帶雨飜蛛網 因風拂綺羅

螢罹星欲動 金碎月穿華

爲報探花蝶 飛飛恐見遮

이응희(李應禧), 「거미줄[蛛網]」


이 시는 거미줄을 다루고 있는데 거미줄을 꽤나 낭만적으로 그렸다. 거미줄이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린다. 반딧불이가 거미줄에 걸려 있으면 마치 별이 움직이는 것 같았고, 달빛이 거미줄 새에 비추면 금빛이 부셔지는 것만 같다. 이렇게 거미줄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동물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나비에게 거미줄을 경계하라는 말로 끝맺는다. 여기서 거미줄은 우의(寓意)로도 읽힌다. 삶에서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정작 자신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법이다.




거미는 썩 유쾌한 곤충은 아니다. 그러나 해충을 처리해주는 고마운 곤충이다. 1년 동안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영국 곤충의 총 무게는 영국 인구 전체의 무게와도 같다고 한다. 거미가 거미줄을 칠 때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니 거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상(意想)이 있지만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라는 의미도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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