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43: 선연동(嬋娟洞)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선연동(嬋娟洞)


선연동은 평안북도 평양 칠성문(七星門) 밖에 있는 기생들의 공동묘지이다.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소화시평(小話詩評)』에 “선연동은 당나라 때 궁인야(宮人斜)와 비슷한 곳으로 이곳을 지나는 시인들은 반드시 시를 남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녀들은 꽃같이 아름다웠던 한 철을 보내고 무덤에 자리를 잡았다. 시인들은 선연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모란봉 아래 선연동 찾았더니

골짝에 향 묻었는데 풀만이 봄 알리네.

만일 신선술을 빌릴 수만 있다면

그때 가장 예뻤던 이 불러일으키련만

牧丹峯下嬋娟洞 洞裏埋香草自春

若爲借得仙翁術 喚起當年第一人

이달(李達),「선연동(嬋娟洞)」


이 시는 이달의 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고『청장관전서』에 실려 있다.『청장관전서』에는“손곡(蓀谷) 이달(李達)이 서경(西京)을 유람할 적에 선연동을 지나는데 이때 마침 산꽃은 바람에 나부끼어 떨어지고 비를 실은 구름은 대낮을 침침하게 하였다. 손곡은 선연동의 무덤가를 맴돌며 슬퍼하다가 시 1수(首)를 읊었다”라고 나온다.

이 시를 짓고서 술에 취해 여관에서 자는데, 기생들의 귀신이 나타나서 좋은 시를 지어 주어 감사하다고 하고서 떠났다고 한다. 이달은 죽은 그녀들을 소생시키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바람을 담아서 그녀들의 죽음에 대해 조사(弔辭)를 남겼다.




해마다 봄빛 버려진 무덤에 이르면

꽃은 새 단장한 듯 풀빛은 치마 같네.

저 많은 꽃다운 넋 그대로 남아 있어

지금껏 비 되었다 다시 구름 되는구나.

年年春色到荒墳 花似新粧草似裙

無限芳魂飛不散 秪今爲雨更爲雲

권필(權韠), 「선연동(嬋娟洞)」


봄이 되면 무덤에 꽃이 피고 풀이 돋아난다. 기녀의 모습에서 연상하여 꽃이 핀 건 여인이 새 단장한 것으로, 풀이 돋아난 건 여인의 치마로 보았다. 무덤에 구름이 끼다 다시 비가 내리니 더욱 마음이 아련하다. 시인은 이 풍경을 고사를 빌려 아름답게 표현했다. 초나라 회왕(懷王)이 고당(高唐)에 노닐 다가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과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다. 여인이 이별하며 말하기를 “첩은 무산(巫山)의 남쪽 고구의 꼭대기에 있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陽臺) 아래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처럼 그는 죽음의 공간인 무덤에서 그녀들을 되살려내고 있다.

권필은 같은 제목으로 한 편의 시를 더 남겼다. “적막한 옛 골짝에 풀만이 봄 알리는데, 객이 와서 어인 일로 몰래 마음 슬펐던가. 가련타 이곳에는 비취가 묻혔으니, 모두가 당시에는 가무 하던 사람일세.[古洞寥寥草自春, 客來何事暗傷神. 可憐此地埋珠翠, 盡是當時歌舞人]” 시인은 당시에 기녀들의 가무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삶의 무상함을 재확인 한다.




선연동 고운 풀빛 비단치마와 견주나니

분내음 남은 향이 옛 무덤 감도누나

오늘날 아가씨들 아름다움 자랑 마오

무덤 속 무수한 이 그대들과 같았다오

嬋娟洞草賽羅裙 剩粉殘香暗古墳

現在紅娘休詑艶 此中無數舊如君

이덕무(李德懋),「선연동(嬋娟洞)」


『삼명시화』에는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복하여 한 때 널리 전송되었다.”라 나온다. 선연동에 있는 향그런 풀을 여인의 비단치마와 분내음으로 환치시켰다. 지금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과시하는 젊은 아가씨들이나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그 옛날 아가씨들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도 그때는 그랬다. 죽음은 이렇게 다음 역처럼 분명하게 우리를 기다린다. 젊고 아름다운 것은 한 때에 부여받은 찬란한 선물이고, 늙고 추레해지는 것은 그동안 누렸던 것에 대한 압류통지서다.




고전 영화를 보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여자 배우들이 나온다. 현재의 모습을 검색해 보면 그냥 영락없는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다. 세월은 무상해서 금세 젊음을 빼앗아가고 생명을 앗아간다. 선연동은 기녀들의 무덤이다. 시인들은 그곳에 들러 노래하고 춤추었던 아리따운 기녀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젊음도 생명도 다 사라진 초라한 무덤에서 인간사의 허망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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