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강추위
강추위는 고한(苦寒), 극한(極寒), 혹한(酷寒)이라고 표현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겨울에는 서울의 추위가 만만치 않았다. 눈도 자주 오고 기온도 낮았다.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옛날 추위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다. 집의 난방이나 옷의 방한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추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북한산은 창처럼 깎아지르고
남산은 소나무가 새까맣도다.
솔개 지나자 숲은 오싹하였고,
학 울자 저 하늘은 새파랗도다.
北岳高戌削 南山松黑色
隼過林木肅 鶴鳴昊天碧
박지원(朴趾源), 「지독한 추위(極寒)」
북한산은 뾰족한 창처럼 날카롭게 보이고 남산에 있는 소나무는 파랗다 못해 시커멓다. 이때 솔개가 지나가니 숲은 겁먹은 병아리처럼 움츠려 들고, 학이 울면서 지나가니 하늘은 새파랗게 질려서 금이 갈 것만 같다. 땅과 하늘이 온통 얼어붙어 있었다. 춥다는 글자를 직접 쓰지도 않고서 추위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호백구 겹쳐 입고 산가지로 술잔 세며
맹추위와 힘써 싸우니 시름을 자아내네.
내년 봄에 꽃이 활짝 피기를 기다렸다
천 개 문 활짝 열고 누대 위에 앉으리라
裘重狐腋酒添籌 力戰寒威使我愁
擬待明年春放後 洞開千戶坐樓頭
홍직필(洪直弼), 「혹독한 추위에 정미년○열두 살 때 짓다[極寒 丁未○十二歲作]」
이 시는 1787년 홍직필의 나이 12세 때 쓴 것이다. 호백구(狐白裘)는 맹상군(孟嘗君)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우의 겨드랑이 아래에 난 털로 만든 진기한 보물이다. 따뜻한 옷을 입고 술의 힘을 빌어서 추위를 이겨본다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짐을 해본다. 내년 봄이 찾아오면 그동안 꽉 닫혀 있던 모든 문들을 열어젖힌 뒤에 누대 위에서 봄의 기운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한 바람으로 이 추위를 견뎌본다.
따순 옷 입은 공자 겹방석에 앉았으니
눈 속에서 땔감 지고 울 줄 뉘라서 알겠는가
어이하면 부여국의 천 조각 옥 얻어서
추운 계곡 흩뿌려서 따순 봄 되게 하랴
狐貂公子坐重茵 雪下誰知泣負薪
安得扶餘千片玉 散投陰谷化陽春
성운(成運), 「혹독한 추위[苦寒]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을 보면 첫 장면에서 남편과 두 자녀는 비 내리는 갑판에 나가 있는데, 나탈리는 홀로 선실에 앉아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방 안에 따숩게 있는 사람이 눈 속에 땔감을 나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상대방의 심정을 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여국에서 생산되는 화옥은 실내에 두면 이것 자체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와 따로 난방을 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이 화옥을 얻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계곡에 뿌려서 따뜻한 봄날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인가? 다른 사람을 완전히 공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최대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유효하다. 공감의 능력이 인격이다.
그렇다고 추위가 다 나쁘지만은 않다. 추위는 타인의 체온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며, 봄날을 간절히 기다리게 한다. 그렇지만 봄날은 더디게 오고 추위는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추위는 꽃샘추위로 마지막 저항을 하다 끝내 백기 투항한다. 그러면서 모질게 힘들었던 기억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뒤바꿔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