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증오하며 45: 꽃샘추위

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by 박동욱

꽃샘추위


꽃샘추위는 초봄이 지나 따뜻해지다가 꽃이 필 때 쯤 다시 날씨가 일시적으로 추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꽃샘은 봄꽃이 피는 걸 시샘한다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꽃샘추위는 춘한(春寒)이라고 쓰고 꽃샘바람은 투화풍(妬花風)이라 쓴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말이 있고 중국 속담에는 ‘봄추위는 뼈가 시리고, 가을 추위는 살갗이 시리다[春凍骨頭秋凍肉]라는 말이 있다. 꽃샘추위에서 겨울이 계속된다는 절망을 읽어야 할까 봄이 다가왔다는 희망을 읽어야할까?




허름한 집 봄추위에 바람 새어 들까봐

아이 불러 불을 지펴 여윈 몸 덥히었네.

남쪽 창가에서 책을 뽑아 조용히 읽어보니

말로 못할 맛이 있어 나 홀로 즐거웠네.

破屋春寒怯透颸 呼兒添火衛形羸

抽書靜讀南窓裏 有味難名獨自怡

이황(李滉, 1501~1570), 「봄 추위[春寒]」


집이 변변치 않아 외풍이 많이 들어올까 봐 아이놈 불러서는 아궁이에 불 지필 것을 명했다. 몸이 바싹 말라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좀 훈기가 드니 그제야 되는대로 책을 뽑아서 볕이 잘 드는 남쪽 창에 앉아 책을 읽는다. 따순 방, 좋은 햇살, 읽고 싶은 책. 그래 밖에 몸서리치게 추운 한기가 일어도 안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리라 다짐해 본다.




한기는 봄 하늘을 가두고 눈은 숲 에워싸니

온 산에 화초들은 꽃망울 닫았다네.

봄기운은 냇가 버들에 먼저 옴 알겠으니

바람 맞은 가지 희롱해서 엷은 금빛 띠려 하네.

寒鎖春天雪擁林 滿山花卉閉芳心

方知陽氣先溪柳 已弄風條欲嫩金

황준량(黃俊良, 1517~1563), 「봄추위에 즉흥적으로 쓰다(春寒卽事)」


한기는 가득하고 눈은 남아 있다. 온 산에 있는 꽃들은 입을 꾹 다문 듯이 꽃망울을 닫았다. 봄이 왔지만 봄은 온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냇가에 있는 버들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꽃들을 보면 봄이 안 온 것 같지만 버들가지를 보면 봄은 분명 성큼 다가와 있다. 꽃을 보면 절망이 읽혀지지만 버들가지를 보면 희망이 읽혀진다. 같은 계절인 봄에도 꽃과 버들가지는 이렇게 제각기 반응한다. 꽃망울을 닫아야 하나 아니면 버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여야 할까.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다고 나자빠져 있을 수도 툴툴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봄바람 또한 못된 장난 쳤으니

비와 함께 추워지게 만들었구나.

버들은 움츠리며 눈 뜨기 어렵고

매화는 찡그리며 뺨 펴지 않네.

물 불어났다 얼음 다시 얼었고

산 차가워 눈 그대로 쌓여있었네.

내게 따순 〈양춘곡〉 갖고 있으니

언 붓을 불어대며 시를 쓴다네.

東風亦惡劇 與雨作寒媒

柳澁難開眼 梅顰不破顋

水生氷更合 山冷雪仍堆

我有陽春曲 呵將凍筆裁

이수광(李睟光), 「비 내린 뒤 바람이 매서워서 추위가 심하다[雨後風冽寒甚]」


비바람에 겨울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사물들은 봄 맞을 준비를 거둬들였다. 버들은 잎이 움트지 않았고 매화는 꽃잎이 터지지 않았다. 버들잎이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잠에서 막 깨어나 눈 뜨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유안(柳眼)’이라 하고, 매화 꽃봉우리가 한창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가리켜서 여인의 뺨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매시(梅顋)’라 부른다. 물은 꽁꽁 얼어 있고 산은 눈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온갖 사물들은 봄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양춘곡(陽春曲)」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 이름이다.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따라 부르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의미한다 볼 수 있다. 그렇게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정지용은 「춘설」에서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라 하여서, 추위를 온몸으로 맞겠다며 봄을 기다리는 설렘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규보의 「투화풍(妬花風)」에서는 “만일 꽃 아껴서 바람 불지 않는다면 그 꽃 영원히 자랄 수나 있겠는가[惜花若停簸, 其奈生長何]”라 하였다. 꽃샘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성장도 있을 수가 없다. 꽃샘추위는 대개 마지막 시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고 봄이 완전히 오기 전이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영화 화양연화의 이름 모를 사람의 댓글에 이렇게 쓰여 있다. “봄을 기다리던 겨울 같은 시절이 알고 보니 봄이었네.” 그래 봄이다. 봄은 그렇게 겨울처럼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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